광주 학동참사 유가족, '트라우마' 소방·경찰에 손 내밀었다
"시신 훼손 심해…그 모습 마주한 이들에 대한 치료 절실"
"상담 뿐 아니라 약물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전문적 지원 필요"
-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광주 철거건물 붕괴 참사 유가족이 당시 구조활동을 벌였던 소방·경찰관의 트라우마 치료에 손을 내밀었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돼 가지만 적절한 재난 트라우마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 속에 가족을 품으로 돌려준 소방대원과 경찰의 트라우마 극복 지원이 절실하다는 취지다.
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학동 참사 유가족은 최근 HDC 현대산업개발 측에 사고 트라우마 치료 재원을 요청했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공간 부지를 사고 지점에서 약 300m 떨어진 외부에 조성하는 조건이다.
유가족 측은 당초 사고가 발생했던 학동증심사입구역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추모공간을 요구했지만 현실화되지 않아 이같은 대안을 요구했다.
추모공간이 만들어질 부지는 도심 속 산책 공간인 연결녹지로 현대산업개발이 광주시에 기부채납하는 만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것으로 유가족 측은 전망했다.
결국 이 재원을 트라우마 치료 비용으로 사용해달라는 취지다.
치료 대상에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비롯해 구조활동을 벌였던 소방관과 경찰관, 화정아이파크 참사 유가족 등을 포함시켰다.
광주에 마땅한 사회적 재난 트라우마 치료 센터가 없고, 비용 문제로도 이들이 치료를 받지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황옥철 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사고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머리 윗쪽으로 건물 잔해들이 떨어지면서 시신 훼손 정도가 굉장히 심각했다"며 "그 모습을 마주하고 또 구조했던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치료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경찰관은 당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은 여전히 힘들어 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전해듣기도 했다"며 "가족을 대표해 시신을 확인했던 저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현재까지 트라우마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가족들은 값비싼 치료 비용에 엄두 조차 못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현대산업개발은 관공서에 재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상자들의 관련 치료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 측은 학동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지난주 강기정 광주시장과 만나 이같은 내용을 건의했다.
강 시장은 이들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사회적 재난 트라우마 치료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시장님도 확실히 공감했다"며 "오는 7월 개원하는 국가폭력트라우마 치유센터와 연계해 사회적 재난 참사 관련자 치료 방안에 대해 찾아보자고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재난 피해자를 지원하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최근 생존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심리상태 등 트라우마 전수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유가족들은 사회적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틀을 광주에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며 "가족을 품에 돌려준 소방대원들과 경찰들도 사회적 재난 참사의 피해자다. 단순 상담 뿐 아니라 약물 치료까지 병행할 수 있는 의사가 있는 전문적인 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고 싶다"고 했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지역에선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승강장에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가 매몰, 승객 17명 중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사고는 건출물 해체계획서와 안전 지침 등을 지키지 않은 불법 철거 공사 등이 주요 원인으로 조사됐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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