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진실규명 후퇴 비판 쏟아지는 5·18조사위…무엇이 문제였나

조사관 빈번한 퇴직·교체…중간 점검 의무사항 없어
활동 종료 앞두고 10건 이상 보고서 벼락치기 의결

편집자주 ...'마지막 진실 찾기' 기대 속에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4년에 걸친 활동 끝에 부실한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부실·왜곡' 논란의 이면에는 5·18진상조사위의 잘못된 구성과 잦은 인력 교체, 부실한 조사, 벼락치기 의결 등 숱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1은 3차례에 걸쳐 5·18진상조사위의 부실한 활동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5·18기념재단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오월정신지키기범시도민대책위원회, 광주시, 광주시의회 등 단체가 25일 오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조사위보고서 평가 및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2024.3.25/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2019년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1실 4과 총 52명으로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

진상규명 범위가 확대되고 전문위원까지 추가되면서 활동이 종료된 2023년까지 평균 145명 내외의 인원이 참여했다. 다른 과거사위원회와 달리 우호적인 분위기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5·18조사위지만 의결된 개별보고서들은 '역사적 후퇴'라는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5·18진상조사위에 참여한 비상임위원들은 이같은 왜곡의 이면에는 조사위 내부에 총체적 문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1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한 민병로 전남대 법전원 교수·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5·18조사위가 조직 내부 문제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했다.

우선 '일관성' 부족이다. 조사위는 4년 간 33명이 사직서를 내는 등 조사관들의 빈번한 퇴직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 한 채 조사가 이뤄졌다. 인력을 채용해 재차 투입시키는 데도 최소 1년의 시간이 소요돼 차질을 빚어왔다.

조직 개편으로 업무가 이관될 때 담당자가 바뀌면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성폭력 피해 조사는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졌다.

일례로 조사 4과가 신설되면서 발포 책임자과 헬기사격 등 핵심 과제가 4과로 이관됐지만 기존 담당자 대신 새로운 조사관이 사건을 도맡았다.

1980년 5월 당시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권용운 일병 사망 사건도 대표적 사례다. 권 일병은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지만 개별보고서엔 '시민군 장갑차에 치였다는 진술이 상존한다'고 서술됐다.

민병로 교수는 "권용운 일병 사망 경위도 당초 조사 1과 담당이었지만 4과로 넘어갔다"며 "담당 업무를 했던 사람도 함께 옮겨가야 하지만 시스템상 그러지 못 했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조사 4과장도 활동 종료 6개월을 앞두고 사직했다"며 "새로 온 과장은 6개월도 되지 않는 기간 내에 핵심 과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졸속 보고서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사위가 한시적 조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도 사퇴 등 개인의 이탈 문제도 있지만 조사 개시 당시 조사관들에게 조사를 마치는 일정 기한을 부여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기한을 연장할 수 있었던 점도 부실한 조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각 과제에 대한 조사·보고기한이 없었던 만큼 중간 점검이 이뤄지지 않아 조사 진행 상황과 조사관들의 업무 능력 등 전문성을 판단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김희송 교수는 "2021년 비상임위원으로 들어갔을 당시 깜짝 놀랐던 게 위원회 활동에 대한 결과 보고가 단 한번도 백분율로 보고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며 "광주시와 정치권에서 개입해 조사위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활동 종료날인 지난해 12월 26일에서야 10건 이상의 보고서가 결의됐다"며 "특히 암매장 보고서의 경우 12월 23일 처음으로 봤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중간점검 과정 없이 활동 종료 직전에 대부분의 과제가 벼락치기로 의결돼 일부 보고서가 진상규명 불능 처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군경보고 피해서 등은 불채택 돼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활동 마지막 날 심의위원회에서 '진상규명과 불능으로만 결정할 수 있다. 할 것이나 말 것이냐'고 물어와 불능이 최소한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