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환절기 감기환자 이어지는데…"의사선생님 언제 온다요?"

공보의 차출된 농어촌 보건지소…병원 먼 주민들 안절부절
인근 보건지소서 순회진료…"의료대란 하루 빨리 끝내야"

의대 증원 반발에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역 공보의들이 차출된 12일 오후 전남 화순군 이서면 보건소에 방문한 어르신이 진료와 관련 문의하고 있다. 2024.3.12/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화순=뉴스1) 박지현 기자 = "난 혈압약 타 먹는디 의사선생님은 언제 온다요?"

12일 오후 전남 화순군 이서면 보건지소에서 만난 정상호 씨(78). 그는 고혈압 약을 타기 위해 3개월마다 한번씩 이곳 보건지소에 들러 진료를 받는다.

하지만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을 대체하기 위해 이곳에서 근무하던 의과 공중보건의가 차출된 사실을 모른 채 보건지소를 찾았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 씨는 "큰 병원에서 의사를 데려갔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여기 동네는 병원도 약국도 없어 보건지소가 유일한 동아줄이다"며 언제쯤 진료가 가능한지를 묻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농어촌 지역 공보의들이 차출되면서 가까이 진료시설이 전무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동네에 병·의원, 약국이 없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의원은 차로 15~20분을 가야 한다. 주민들이 대부분 농촌 고령자들인 터라 병원까지 걸어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차량이 있는 이웃에게 사정해 차를 얻어타거나 마을버스를 장시간 기다려야 한다.

이서면 보건지소에는 의과와 한의과 공보의 2명이 상주하며 감기와 같은 내과진료, 당뇨·혈압·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예진 등의 업무를 처리해 왔다.

그러나 지난 11일부터 의과 공보의가 화순전남대학교병원으로 4월 5일까지 파견나가면서 의과 환자 접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화순군 보건소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13㎞ 떨어진 동복면 보건지소의 공보의가 목요일과 금요일에 순환근무하면서 환자들을 돌보도록 했다.

의대 증원 반발에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역 공보의들이 차출된 12일 오후 전남 화순군 이서면 보건소에 이와 관련해 진료차질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2024.3.12/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공보의 부재를 아는 주민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료소를 찾아왔고, 뒤늦게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감기에 걸린 송갑순 씨(85·여)는 "내일 와도 의사 선생님이 없는 거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목요일에 방문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안과 수술 후 안약을 구하기 위해 보건지소를 찾은 박덕순 씨(83·여)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박 씨는 "의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와봤다. 시골에 1명씩 있는 의사를 데려가면 시골사람들은 어쩌라는 거냐"고 토로했다.

특히 환절기를 맞아 노인들을 중심으로 잦은 감기 환자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우려가 높았다.

보건지소는 각 마을 이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진료 차질을 안내했지만 이틀간 4~5명의 어르신을 돌려보내야 했다.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역 공보의들이 차출된 12일 오후 전남 화순군 이서면 보건소에 방문한 어르신(오른쪽)이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돌아서고 있다. 2024.3.12/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보건지소 관계자는 "공보의 파견 기간이 1개월보다 더 길어질까봐 걱정이 크다"며 "비록 공보의 부재가 당장 큰 주민 피해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장기화되지 않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송갑순 씨도 "목요일과 금요일에만 진료를 보라는데 노인들이 정해진 때에만 아프라는 법이 있냐"며 "빨리 잘 해결돼서 노인들이 걱정 없이 약 타먹을 수 있음 좋겠다"고 당부했다.

전남도는 11일 전문의·공보의 23명을 차출해 전공의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생긴 서울 아산병원과 세브란스 병원, 전남대병원 등으로 약 4주간 지원을 보냈다.

전남에서는 22개 시·군 중 13개 시·군에서 최소 1명, 최대 3명의 공보의가 차출됐다.

war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