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한 군대는…" 종교적 이유 대체역 거부자에 재판장 일침

"현역 병사들 고된 근무환경에서도 자신의 임무 수행"
종교적 이유 대체역 거부자에 징역 1년6개월 실형 선고

ⓒ News1 DB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재판장은 육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여러 군인들을 봐 왔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고역에도 군 제도를 징벌이라거나 위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13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재판에서 광주지법 형사7단독 전일호 부장판사의 선고 내용 중 일부다.

A씨는 교도시설 등에게 병역을 대신하게 하는 대체역 복무에 응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대체복무요원'은 2018년 헌법재판소가 '정당한 사유가 있는 입영 거부자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며 당시 '대체복무' 규정을 두지 않았던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신설된 병종(兵種)이다.

육군과 해군은 18개월, 사회복부요원은 21개월 단축 복무하는 중이지만 양심적 이유로 군생활을 거부하는 의무자는 교정시설 등에서 36개월간 대체복무할 수 있다.

A씨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교도시설 등에서는 군복무를 할 수 없고, 현역병보다 기간이 긴 대체역복무는 징벌이자 고역의 의미를 담은 위헌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전일호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군복무를 하면서 경험했던 군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하며 피고인에 대한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광주지방법원의 모습./뉴스1 DB ⓒ News1

전 판사는 "저는 2004년 육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2007년 대위로 전역했다. 제 근무 부대는 강원도 철원에 주둔한 백골부대였다"며 "안전이 확보된 이동로 외에는 지뢰가 매설돼 있었고, 비무장지대에는 언제든 북한군의 사격을 받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현역 병사들은 이런 고된 근무환경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한 운전병이 운전하던 굴착기가 이동 중 도로 경사면으로 추락해 군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군인의 어머니는 영안실에 안치된 싸늘한 아들의 주검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지면서 오열했다"면서 "그는 입대 전 굴착기 운전면허가 없었고 신병교육대에서 운전병으로 차출됐지만 고역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또 "추운 겨울날 GOP 인근 부대 병사가 입에 소총을 물고 방아쇠를 잡아당겨 사망했다. 특정 종교를 믿던 한 병사는 토요일 예배를 못해 힘들다는 이유로 탈영했다. 산에 숨어 있던 그 병사는 부모의 설득으로 자수했고 일요일 종교활동 참여를 다짐해 선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 판사는 "백골부대 인근 한 부대의 병사는 내무반에서 동료 병사의 돈을 훔쳐 형사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시골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최전방 부대의 소총수로 근무했다. 형편이 어려워 집에서 용돈을 받지 못했고 너무 배가 고파 PX에서 음식을 사먹기 위해 돈을 훔쳤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 판사는 "본 재판장이 법무관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여러 현역병의 군 복무는 고역 그 자체였다"며 "그러나 비무장지대 근무 병사도, 사망한 군인의 유가족들도, 성폭력 피해 병사도, 자기 종교와 다른 종교활동에 참여해야 했던 병사도, 그 누구도 고역이기에 군 생활이 징벌이라거나 위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판장이 교도소에서 합숙 형태로 이뤄지는 대체복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아 얼마나 고역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현역병의 복무 강도보다 무겁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 대체복무제도의 기간이나 고역 정도가 과도해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없다. 변호인과 피고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대체역복무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다루고 있는 점, 도주 우려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