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의식 약한 곳인데…광주 동구 '고향사랑기부금' 깜짝 놀랄 성과

초기부터 기금 사용처 선발…민간플랫폼 통한 지정기부 받아
"고향 개념 약하지만 명확한 기금사용에 외지인 소액기부 많아"

광주 동구청사 전경. /뉴스1 DB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시·군 단위 지자체에 비해 고향에 대한 연대의식이 약하고 지역 특산품도 없는 광주광역시 동구가 지난해 9억2000만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모았다.

기획예산실에 업무를 배정, 시행 초기부터 기금 사업을 발굴해 사용처를 명확히 하고 민간 플랫폼을 활용한 지정 기부와 홍보 효과가 삼박자를 이룬 결과로 풀이된다.

9일 광주 동구에 따르면 고향사랑기부제를 첫 시행한 지난해 8180명이 동구에 9억2600만원을 기부했다.

기금처별로는 행정안전부 공식 플랫폼 '고향사랑e음' 2억8900만원, 민간 플랫폼 '위기브(wegive)' 6억3600만원이다.

인근 자치구인 △광산구 3억1200만원 △서구 3억900만원 △북구 2억5900만원 △남구 2억3000만원과 비교해 서너배 많은 규모다. 광주시는 1억1100만원을 모금했다.

광역도시권의 기부 상황을 확인한 동구의 자체조사 결과 전국 69개 특·광역시에서 모금액 1위, 전국 243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10위권 안에 들 것으로 분석했다.

동구는 원도심으로 일반 시·군 단위 자치단체에 비해 향우회 등 상대적으로 고향에 대한 연대의식이 약하고 지역 대표 특산품 또한 취약해 고향사랑기부제 추진에 난항이 예상됐다.

승부처를 마련하기 위해 동구는 업무 배정부터 '세무과'가 아닌 '기획예산실'을 택했다.

'돈'을 관리하는 곳이 아닌 '사업'을 발굴하는 곳에 업무를 맡겨야 기부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고 이로 인해 기부금이 모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시행 5개월 만에 동구는 기부금 사용처 2곳을 제시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광주극장'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발달장애 청소년 'E.T 야구단(East tigers)'의 활동 운영비 지원과 전용 야구 연습장을 건립하는 사업에 모금액을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찌감치 기금 사업을 선정한 동구지만 공식 플랫폼상 한계에 마주했다.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금 사용처를 특정할 수 있는 '지정기부'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으면서다.

민간플랫폼 '위기브'에서 모금 중인 광주 동구 고향사랑기부제 지정 기부. (위기브 갈무리) 2024.1.9/뉴스1

동구는 고향사랑기부제 롤모델인 일본처럼 지정기부가 가능한 민간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민간 플랫폼은 지정기부뿐 아니라 모금 기획부터 영상제작·답례품 마케팅, 기부자 관리 등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를 대행하면서 공무원들의 인력·행정적 한계를 해결해줬다.

그 결과 민간 플랫폼을 통한 기부액(6억3600만원)이 '고향사랑e음'(2억8900만원)을 통한 모금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8180명의 기부자 중 100만원 이상 고액기부자는 48명에 그친다. 이들을 제외한 99%가 '10만원대 외지인 기부자'들이다.

고향 개념보다는 기부금 사용처가 확실한 투명성으로 공감대를 형성했고 더불어 지정기부를 통해 동구에 기부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동구 관계자는 "고향 개념이 약한 곳에서 많은 모금이 이뤄진 건 기획실 업무·기금사업·지정기부 3가지가 성과를 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확실한 목적과 연속성을 가져야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 기부자들에게 1분기 내에 기금 사용처 등 구체적인 활용 방안에 대해 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부터 민간 플랫폼을 통한 동구의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은 중단됐다.

행정안전부에서 '현행법이 정하지 않은 접수 방법'을 이유로 플랫폼 사용 일시 중단을 요청하면서다. 행안부 측은 지정 기부와 민간플랫폼의 순기능을 인지하고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pepp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