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정우성·황정민 기싸움 한 복도…알고보니
5·18 당시 전두환 계엄군 주둔한 광주 조선대서 영화 촬영
조선대, 장태완 수경사령관·벙커 사수하다 전사한 정선엽 병장 모교
- 서충섭 기자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전두환 신군부의 태동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0일만에 누적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촬영지 중 하나였던 광주 조선대학교가 실제 영화 배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면서 주목받고 있다.
조선대는 12·12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역사를 가졌고, 극중 정우성이 역할을 맡았던 장태완 수경사령관도 조선대를 졸업했다.
3일 조선대에 따르면 영화 '서울의 봄' 제작진은 지난해 5월28일부터 29일까지 주말을 이용해 이틀간 본관 복도에서 배우 정우성과 황정민이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촬영 장소는 조선대 본관 1층 복도와 본관 중앙 계단, 3층 복도다. 해당 장면은 영화 초반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모티브로 각색된 이태신을 연기한 정우성과 전두환을 모티브로 각색된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이 신경전을 벌이는 장소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같은 편 하자"면서 자신을 회유하려는 전두광을 향해 이태신은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라고 맞받아친다.
영화가 촬영된 조선대 본관은 전두환 신군부의 주도로 1980년 5월18일 새벽 계엄군이 진입해 학생들을 구타하고 연행해간 장소다.
12·12로 군 요직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국회를 점거하고 5월18일 새벽 0시부로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5월18일 새벽 조선대로 진입한 7공수 35대대 병력도 조선대 본관에서 학생들을 수색했다. 그리고 방송실에서 행사 준비를 하던 학생 20명을 포함한 43명을 체포했다.
조선대 내 또다른 '서울의 봄' 촬영 장소는 본관 뒷편의 지하대피소다. 과거 창고와 학생 식당으로 쓰였다가 폐쇄된 해당 공간은 영화 중후반 육군본부 B2벙커 입구로 등장한다.
5·18 민주화운동 최후항전지인 옛 전남도청에서 불과 8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조선대는 전두환 신군부 계엄군이 진압 거점으로 삼고 광주 시내로 진출, 시민들을 무더기로 연행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980년 5월19일 새벽 추가 투입된 11공수여단은 조선대 운동장에 막사를 쳤다. 수뇌부들은 조선대 학군단 사무실에서 작전회의를 가졌으며 학내에는 전차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장갑차, 트럭도 배치됐다.
조선대를 근거지로 삼은 11공수는 잇따라 광주 시내로 진출해 시위대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구타해 조선대로 연행해 갔다.
당시 조선대에 주둔한 공수부대에 식수를 공급하려 온 배관공은 "청년들을 30~40명씩 실은 트럭이 쉴새 없이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군인들은 청년들을 끌어내려 낮은 포복으로 운동장을 몇바퀴씩 돌게 하고 구타한 뒤 체육관으로 끌고 갔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결국 7공수와 11공수는 5월21일 오후 1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후 시민들이 무장해 반격하자 11공수는 조선대 뒷산을 넘어 4㎞ 떨어진 주남마을로 퇴각하면서 학교를 떠났다.
영화와 조선대의 연관점은 또 있다.
극 중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역의 모티브가 된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은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구 상고를 졸업한 장태완은 6·25가 발발하자 19살의 나이로 육군종합학교에 갑종 장교로 지원, 소위로 임관하면서 대학을 가지 못했다.
그러다 1952년 군사교육총감부가 광주에 설치되고, 조선대가 위관·영관 장교 위탁 교육을 맡으면서 장태완도 조선대에 입학해 1958년에 졸업한다.
또 12·12 전사자 두 명 중 한 명인 정선엽 병장도 조선대에 재학했다.
'서울의 봄'에서는 육군본부 B2벙커를 지키다 전사한 조민범 병장으로 표현된 정 병장은 전남 영암 금정면이 고향이다.
그는 조선대 전기공학과 2학년을 다니다 1977년 입대, 국방부 헌병으로 복무하다 제대를 3개월 앞둔 1979년 12월13일 지하벙커에서 초병 근무를 서다 군사반란군의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
그동안 순직자로 처리됐던 정 병장은 43년만인 지난해 12월7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재조사로 전사자로 재분류됐다.
이처럼 영화 '서울의 봄'이 전두환 신군부로 비롯된 역사적 사건들과 다수의 연관성을 띠면서 제작진의 제작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제작진은 "한참 영화가 상영중인 만큼 해석을 아끼겠다"는 입장이다.
학내 구성원들은 오랜만에 극장가에 활기를 되찾게 한 영화에서 조선대의 흔적을 잇따라 발견할 수 있어 이채롭다는 반응이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봉 첫날 영화를 관람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역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메시지가 매우 흥미로웠다"면서 "특히 12·12는 정치적으로 5·18의 프리퀄이라 할 사건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미 5·18까지 전부 이야기를 다 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같이 현대사의 아픔을 다룬 영화에 조선대학교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조선대 출신 실존 인물도 두 명이나 언급되는 것이 매우 뜻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조선대는 본관이 2004년 등록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됐고 드라마 '재벌집막내아들', 웹드라마 '이두나!'의 촬영 현장으로도 쓰였다.
zorba85@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