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 CCTV에 잡힌 수술복 행인…알고보니 방화집착 40대

[사건의재구성] 병원 인근서 주운 수술복 입고 연쇄방화
무면허로 화물차 훔쳐 타다 사고도…법원, 징역 4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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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올해 3월17일은 광주 소방대원들에게 이상한 날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울리는 출동벨에 긴급 출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소방대원들은 오전 6시10분쯤 광주 서구 한 도로에서 발화된 쓰레기봉투 화재를 진화했다. 작았던 불은 한전이 관리하는 전봇대 하단으로 옮겨붙어 하마터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뻔했다.

약 10분 뒤 인근의 주택에서도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불은 삽시간에 주택 출입문, 지붕 등으로 옮겨 붙어 1000만원의 재산 피해를 냈지만 다행히 초기 진화로 거주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40분 뒤에는 광주 북구의 한 화물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방당국은 적재함에서 시작된 불을 급하게 껐다. 오전 7시40분쯤엔 광주 북구의 한 빌라에서도 큰 연기가 치솟았다.

각종 화재에 대응하던 소방대원들과 경찰관들은 잇따른 불에 수상함을 느꼈다. 화재 원인 조사에서도 전기적 요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 CCTV를 돌려보던 중 수술복을 입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남성의 진행방향을 역으로 추적하기 시작해 방화, 절도, 무면허운전 등 각종 범행을 저지른 A씨(43)를 긴급 체포했다.

조사 결과 당일 새벽 전남대병원 응급실 뒤편에서 하늘색 수술복 한 벌을 우연히 본 A씨는 이를 입고 돌아다녔다.

담배를 피우던 A씨는 순간 '다른 것에도 불을 붙여보고 싶다'는 충격이 일자 참지 않고 인근에 있던 쓰레기봉투에 불을 질렀던 것.

곧장 자리를 옮긴 그는 주택 앞에서 쌓여 있는 파지를 전부 불태우겠다며 불을 피운 뒤, 시동이 켜진 채 잠시 주차돼 있던 도로 위 화물차를 훔쳐 몰고 달아났다.

운전면허가 없던 그는 도주 과정에서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하다 대형 화물트럭을 들이 받는 사고도 냈다.

북구로 이동한 그는 처벌을 두려워하며 천막이 쳐있는 화물차 적재함에 숨어 있다가 그 안에도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인근 한 모텔에 몰래 들어가 옷가지를 훔치고, 같은날 오전 7시40분엔 한 빌라에 숨어들어 불을 질렀다.

도주행각을 벌이던 A씨는 공사장 인부로 위장하기 위해 안전모와 자전거를 훔쳐 타는 등 기행을 이어갔다.

범행 확대를 우려한 경찰은 신속 수사를 벌여 범행 13시간 만에 한 고시원에서 A씨를 검거했다.

조사결과 A씨는 청소년 때부터 본드 등 각종 약물에 중독돼 병원 입·퇴원을 반복해왔다.

A씨는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해주던 친척들을 폭행해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출소 후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는 13일 일반건조물방화, 절도, 도로교통법 위반, 일반자동차방화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주택과 빌라에 방화를 하거나 미수에 그치고, 도주 과정에서 무면허 운전, 절도, 주거침입 등의 범행을 연달아 저질러 죄책이 무겁다"며 "범행 당시 주택에는 피해자가 잠을 자고 있어서 자칫 큰 인명피해가 벌어질 위험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이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고인의 환경과 범행 경위 등 모든 양형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감호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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