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장비 동원 '타짜' 꿈꿨지만…현실은 쇠고랑 [사건의재구성]
적외선 카메라·리시버 등 각종 장비로 도박 승패 지배
사기도박으로 한번에 수천만원 쓸어담아…결국 덜미
- 최성국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손은 눈보다 빠르다.'
영화 '타짜'의 주인공처럼 도박으로 쉽고 빠르게 돈을 벌려고 했던 A씨(54)는 2018년 7월쯤 중국에서 각종 특수장비들을 수입해 왔다.
적외선이 달린 휴대전화형 카메라 5대, 지포라이터형 카메라 3대, 셔츠형 카메라 2대, 목 화투 100개를 비롯해, 카드 숫자를 인식한 뒤 귀에 음성으로 송출하는 기기인 리시버 등 영화를 방불케하는 도구들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돈을 다 딸 수 있다"는 생각이 든 A씨는 사기 도박판에서 이른바 '선수'로 뛸 공범들은 물론, 도박판에서 돈을 빌려주는 '꽁지' 역할을 할 공범들을 모았다.
A씨는 지역 후배와 평소 도박을 즐기던 친구 등을 섭외했고, A씨와 B씨(49) 등 5명은 이렇게 도박단을 꾸렸다.
각종 특수장비가 동원된 도박판에서 돈을 쓸어 담는 건 손쉬웠다. A씨는 귀에 리시버를 꽂고 도박장을 돌아다니며 적외선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기를 놓았다. 카메라가 인식한 화투 숫자는 음성으로 바뀌어 몰래 송출됐다.
타짜 선수들은 손으로 이마를 지목하면 1번패에, 코를 지목하면 2번 패에, 턱을 지목하면 3번 패에 베팅을 하는 식으로 돈을 쓸어담았다.
판이 끝나면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진 뒤 다른 장소에 모여들었고, 얻은 수익은 현금으로 배분했다. 도박은 주로 전남 장흥군의 모처에서 이뤄졌다.
도박의 승패를 지배한 이들은 2018년 12월쯤 120차례에 걸친 도박으로 한 피해자로부터 7100만원을 따냈다. 피해자들은 수십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사기도박에 속절없이 당했다.
이들은 2019년 1월에도 또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 4시간 만에 700만원을 따냈고, 2019년 12월초에는 다른 피해자로부터 2800만원을 벌었다.
전문가가 된 이들은 처음부터 높은 베팅을 걸어 피해자의 베팅을 이끌어 낸 뒤 먼저 패를 포기하도록 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이 수법에 당한 피해자는 1000만원을 잃었다.
2년 넘게 이어진 범행에 다수의 피해자가 나왔는데, 이 중엔 공무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 공무원 피해자는 이들 일당을 사기도박으로 경찰에 고소하려 했다. 그러자 A씨 등은 "여기서 중지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직장과 가족들에게 찾아가 난리를 치겠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들 일당이 따낸 사기 피해금은 5억원을 넘겼다.
이 사이에 새로운 일도 있었다. C씨(63)는 지인이 사기도박에 돈을 잃은 일을 두고 A씨와 B씨를 자신의 주거지로 불러 폭행·협박해 수백만원을 뜯어냈다. C씨는 A씨 등에게 "호구가 있으면 집에 데려오라"며 사기도박 피해자를 물색한 뒤 실제 자신의 집을 도박장소로 빌려줘 사기도박을 벌이기도 했다.
영화 '타짜'의 주인공은 끝내 큰 돈을 따고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수사기관은 이들의 꼬리를 잡았고, A씨는 사기와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 등 나머지 일당 4명은 사기 또는 사기방조 혐의로, C씨는 사기, 협박, 공갈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 가담 정도, 수사단계에서의 태도, 증거인멸 시도 여부, 재산범죄의 피해 액수, 피해 회복 여부 등을 고려해 A씨에게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B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나머지 일당에겐 징역 1년 또는 징역 6개월~1년2개월에 집행유예 2~3년형을 선고했다.
C씨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이 내려졌다.
광주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김성흠)는 최근 항소심을 거쳐 A씨와 일부 일당의 원심을 파기하고 일부 감형을 선고했다.
검사는 A씨 등이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2억원 상당을 더 가로챈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돼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전문적인 장비를 이용해 조직적, 계획적으로 사기도박을 벌여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A씨는 전체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기획하고 사기도박에 필요한 장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대체로 범행을 인정하고 원심에서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당심에서 한 피해자에게 금전을 공탁한 점 등을 종합하면 원심은 다소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렇게 한탕을 노렸던 A씨의 범행은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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