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 이순신의 조선 수군, 장흥 회령포서 재건

[이순신의 회령포] 전선 12척 정비해 명량대첩 이끌어
제장명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제대로 된 해전 수행"

편집자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난파 직전인 병선 12척을 수리해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해전의 출정지, 장흥 회령포가 주목받고 있다. 전남 장흥군은 회령포의 역사적 가치와 이순신 장군과의 연관성을 재조명하는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이순신의 회령포'를 주제로 연속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장흥 회령진성과 회령포.(장흥군 제공) ⓒ News1

(장흥=뉴스1) 박영래 기자 = 지금의 전남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인 회령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을 대파한 명량해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며 사실상 와해됐지만 이순신은 회령포에서 난파 직전인 병선 12척을 수리하고 병사를 모집해 재건에 나서면서 명량대첩의 원동력을 마련했다.

30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의 '정유재란 시기 조선 수군의 재건과 장흥 회령포' 주제논문에 따르면 제장명 연구소장은 "장흥 회령포는 당시 조선 수군이 제대로 된 해상작전과 해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곳"이라고 정의했다.

1597년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했고, 그해 8월 초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통제사로 재임명해 수군 재건의 중책을 맡겼고, 이순신은 칠천량해전의 결과를 탈출해온 장수들로부터 듣고는 향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라도로 향했다.

이때 이순신 곁에는 도원수 권율이 지원해 준 군관 9명과 군사 6명이 전부였다.

이순신은 공식적인 임무를 시작한 후 불과 보름 기간 순천, 보성, 장흥을 거치면서 모집한 군사와 군수물자를 회령포에 집결시켰다.

제 소장은 "이전에는 말을 타고 육로로 이동하면서 수군을 정비했다면 이제부터는 전선을 타고 해상으로 이동하면서 수군전력을 강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만호진에 통상 판옥전선 2척이 있었던 사실을 통해 볼 때 회령포에도 비슷한 규모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령포에서 이순신은 배설이 이끌고 온 전선과 그동안 보수했던 기타 전선들을 확보해 12척의 전선을 확보했다.

배설은 경상우수사로서 통제사의 명령 없이 후퇴하면서 보존한 이 판옥선 12척은 훗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을 펼치게 된다.

제 소장은 난중일기 등 각종 자료분석을 통해 "회령포는 칠천량해전 이후 수습된 조선 수군의 총집결지로서 그 기능을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장흥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곳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