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재구성] '층간소음 망상'에 위층 일가족에게 향한 참극

여수 아파트 살인사건…30대 부부·60대 부모 등 참변
사설 CCTV도 범행 못 막아…항소심 무기징역 선고

ⓒ News1 DB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장모씨(35)는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온라인에서 600여종의 흉기를 검색했다.

지난해 2월에는 온라인에서 등산용 칼을 구입했고, 반년 전에는 칼날 길이만 44㎝에 달하는 정글도를 구매했다.

그가 구매한 이 흉기들은 지난해 9월27일 실제로 사람을 해하는 데 사용됐다.

장씨는 사건당일 오전 12시24분쯤 아파트 계단 입구를 서성이고 있었다. 윗집에 거주하는 김모씨(37)를 기다리면서였다.

당시 장씨는 인터폰을 통해 김씨에게 "만나자, 내려오라"고 했다. 계단에서 기다리는 장씨의 윗옷에는 등산용 칼이, 목장갑을 낀 손에는 정글도가 쥐어져 있었다.

늦은밤 아내와 함께 귀가해 불을 끄고 잠을 잘 준비를 하던 김씨는 장씨의 층간소음 항의에 현관문을 열고 내려갔다.

하지만 대화를 위해 내려간 그를 향해 날아온 건 무서운 '정글도'였다. 김씨를 붙잡은 장씨는 그의 온몸에 정글도를 휘둘렀다.

그를 숨지게 한 장씨는 아직 닫히지 않은 위층 현관문으로 들어가 김씨의 아내(39)를 마주했다.

김씨의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과 거실 등으로 달아났다. 장씨는 그를 뒤쫓으며 흉기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또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부엌으로 끌고가 끝내 살해했다.

이같은 모습을 목격한 아내 김씨의 60대 두 부모는 장씨를 제지에 나섰지만 장씨는 흉기로 피해자 부모들도 수차례 찔렀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112에 신고했다. 다시 복도로 나간 장씨는 전화 소리를 듣고 등산용 칼을 주워와 재차 휘둘렀다.

이 순간 김씨의 13살, 8살짜리 두 딸은 다른 방안에 숨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범행을 마친 장씨는 자신의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 사실을 알렸다. 모친의 자수 권유를 받은 장씨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자 부모들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

장씨는 일가족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유가 '층간소음' 때문이라고 경찰에 말했다.

김씨 일가족과 장씨는 윗집과 아랫집에서 9년 가까이 살아왔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4명을 사상케한 장모씨가 전남 순천시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9.29/뉴스1 ⓒ News1

장씨는 사건 발생 3~4개월 전부터 위층 김씨 일가에 층간소음을 수시로 항의했다. 직접 인터폰으로 연결을 하거나 직접 찾아갔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따졌다.

사건에 앞선 9월17일에는 112에 전화를 걸어 층간소음을 고소할 수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장씨는 휴대전화에 물체를 두드리거나 음량을 높인 TV 소리 등을 녹음한 다음 '위층 소음'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만들어 모친에게 전송, "윗집 사람들을 쪼개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등 피해자들에 대한 극도의 분노감과 증오심을 쌓아왔다.

반복되는 항의에 피해자들은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니 너무 우리 집에만 뭐라고 하지 말아달라"며 장씨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지속되는 장씨의 항의에 강한 불안감을 느낀 김씨 일가는 현관문 앞에 사설 CCTV를 설치했다. 이 CCTV에는 범행 당시의 끔찍한 모습들이 녹화됐다.

경찰 조사결과 장씨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의심했고, 피해자들이 자신을 감시하며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망상을 했었다. 장씨는 자신의 집 천장이나 TV 불빛이 나오는 곳 등에 반창고를 붙였다.

재판에 넘겨진 장씨에게 검사 측은 사형을 구형했다.

검사는 "피고인은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세웠으며 범행 과정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면서 "층간소음에 시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소음이 어디에서 유발하는 것인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극단적이고 참혹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살해당한 장면을 목격한 피해자 부모는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피해자의 아이들은 참혹한 현실을 깨닫게 될 때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이 당연하다"며 "중형이 선고돼 법의 엄중함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장씨는 심신장애와 자수에 따른 형량 감경을 이유로 들어 항소했고, 검사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측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기징역형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고 그 자체가 목적이며 한번 잃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며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중대범죄로 엄중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 범행의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범행 결과가 참혹하다. 장씨는 피해망상에 가까운 의식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 부부는 극도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고, 부모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자신의 딸이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면서 "김씨의 자녀들은 두 부모를 잃었다. 이들이 입었을 고통과 충격, 겪게 될 정신적 트라우마 등은 섣불리 가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재범을 방지하고, 기간 없는 수감생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함이 마땅하다"며 "사형은 냉엄한 궁극의 형벌이다. 장씨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로 보이지 않지만 피해망상과 환청 등이 하나의 요인이 됐을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 점과 사형의 특수성과 엄격성 등을 다소나마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판결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