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교도소 암매장 확인…그동안 증언들 다시 주목
3공수여단 11대대 지휘관 신순용씨 "3명 사살 후 묻어"
홍인표 당시 교도관 "계엄군이 시신 묻는 것 목격"
- 서충섭 기자,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서충섭 이수민 기자 =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굴된 신원미상 유골 1구의 DNA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 중 1명으로 확인되면서 행방불명자 암매장에 대한 관련자들의 과거 증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몇년간 '광주교도소 암매장'을 주장해온 증언자들은 "땅 속 묻혔던 진실이 이제 드러날 때"라며 "1구의 DNA 일치는 시작일 뿐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당시 공수특전여단 소속 군인(3공수여단 11대대 소속 지역대장) 신순용씨는 지난 2017년 "옛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민군 3명을 사살해 직접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작전에 참여했던 지휘관이 공개적으로 증언한 것은 최초였다.
신씨는 당시 언론 등에 출연해 자신이 직접 매장한 것 외에도 교도소 안 2곳에서 22~25구의 주검을 매장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2017년 첫 증언 이후 최근까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석과 언론 등에서 같은 증언을 수백번 반복했다.
그의 증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군인들은 '위협'하지 않는 일반 시위대 차량에 사격을 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80년 5월22일 오후 1시쯤 교도소 정문으로 접근하는 시위대 차량에 일제사격을 해 3명을 사살한 뒤 교도소 앞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사망자 신원과 관련해서는 2명은 20대로 추정되며 나머지 1명은 고교생 정도라고 설명했다.
암매장 당시 순간도 생생하게 증언해왔다. 그는 부하 서너명과 함께 정문에서 100여m 떨어진 도로 맞은편 야산에 야전용 삽으로 구덩이를 판 뒤 묻었다고 했다.
신씨는 그간 조사과정에서 꾸준히 '아쉬움'을 제기해왔다. 그가 암매장 장소로 지목한 광주교도소 맞은편 '야산'에 각화동 농산물도매시장이 들어서면서 도시화로 많은 시신들이 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야산이 언덕져 있었고 근처에 소나무가 울창했다"며 "흙을 다 파버리고 그 위에 건물도 짓고 했으니 지형이 다 바뀌었다. 암매장 된 시체를 전부 다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도소 내에서 내가 목격한 것만 이곳저곳에 30여구다. 그밖에도 군인들 사이에서 듣고 본 것을 모아 추측해보면 광주와 전남 전역에서 한 500명은 행방불명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1990년부터 현재까지 광주시에 신청된 5·18행불자는 447명이다. 이 가운데 시가 행불자로 인정한 사람은 78명에 그친다.
신씨는 이번 DNA 일치 결과가 "자신의 명예마저도 지켜주게 됐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최초 고백 후 같은 군인들에게 '뭐 한다고 나와서 그런 소릴 하냐'고 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다"며 "증언이 거짓이라는 매도도 많았는데 몇 년 전 유골이 나온 후 이번에 DNA 일치 결과까지 나와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행방불명자들에 대해 보상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며 "당시 정황으로는 대부분이 광주교도소 안팎에서 희생돼 묻혔을 것이다. 흔적을 감추려고 아무데나 묻어서 찾지 못한 것도 많을텐데 빨리 조사가 진행돼 국가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된 자들에게 적당한 보상이 이뤄지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신씨와 같은 2017년 진술을 했던 광주교도소 교도관의 증언도 대부분 일치한다.
홍인표 당시 광주교도소 보안과 소속 교도관(현재 5·18 소설 집필)은 "교도소 내에서 군인들이 죽은 시민들을 매장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홍씨가 '교도소 암매장'을 기억하는 날짜는 신순용씨보다 하루 빠른 80년 5월21일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른 오후 공수부대원을 실은 트럭이 들어오더니 군인들이 시신 3구를 화장실 뒤편에 내려놨다. 이후 오후 3시쯤 다시 돌아와 한 구는 4감시대 소장 관사 옆 물빠지는 도랑 인근에 묻었고, 다른 하나는 3감시대쪽으로 가져가버렸다.
그는 "나머지 하나는 어디로 가져갔는지 못봤다. 교도소 앞 채소밭 인근에 묻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했다.
홍씨는 이같은 내용을 1988년 광주청문회 당시 김영진 국회의원 요청으로 증언하기도 했다. 홍씨가 일부 동료 교도관의 목격담 등을 통해 '계엄군이 광주교도소 내 3곳에 다수의 사망자를 암매장한 뒤 은폐했다'고 증언해 파장이 일어나기도 했다.
홍인표씨는 이번 행방불명자 DNA 일치 결과에 대해 "기사 보고 제가 어떤 기분이었겠냐"며 "지금도 울컥울컥하는데 늦게라도 확인이 되서 너무도 다행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당시 교도소 교무과에 설치된 조사실에서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난 뒤 송장이 된 채 실려나가는 사람을 봤다"며 "똑같이 될까 두려워 교도관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 5·18 이후론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참혹한 일을 목격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겠냐"고 덧붙였다.
아울러 새롭게 시신들이 발견될 수 있을만한 장소도 특정했다.
그는 "사형수 묘지 인근에 시신이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4년 전 광주교도소를 다시 가봤는데 3감시대 인근 벌판에 막사가 세워져 있었다.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없던 것인데, 시신들이 묻혀 있을 법한 곳이다. 최근에도 5·18진상조사위원회에도 출석해 관련 내용을 진술했다. 반드시 남은 행불자들의 시신도 발견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광주 북구 문흥동에 위치한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3공수여단이 주둔했던 곳이자 지난 1989년부터 최근까지 5·18 행불자 암매장 제보 10여건이 접수된 곳이다.
시위를 벌이다 전남대에서 붙잡힌 150여명의 시민이 붙잡혀왔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계엄군이 직접 주둔했고, 일대를 오가는 시민과 시민군을 사살해 부지 내 암매장을 했다는 증언도 몇 차례 나왔다.
군 기록에는 약 28구가 교도소 중심으로 암매장 됐다는 보고가 있지만 11구만 발견됐고 17구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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