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신발장에 무수한 칼자국…'살인 예행연습' 뒤 실행
흉기 수건으로 감싼 뒤 불특정 다수에 휘둘러
편의점 20대 알바생 살인…법정에서도 '침묵'
- 김동수 기자
(순천=뉴스1) 김동수 기자 = "피고인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최후 진술)하세요"
"…"
전남 광양에서 홀로 사는 40대 남성 A씨(49)는 수년째 외톨이였다. 그는 휴대전화와 텔레비전도 멀리한 채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오랜 시간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고립된 상태였다. 기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다.
지난 2월19일 자정쯤. 아파트 자택에서 A씨는 누군가를 살해하기 위해 '살인 예행연습'을 했다. 신발장을 흉기로 찌르며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흉기를 수회 휘두른 탓에 신발장 곳곳에는 칼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후 범행 행각은 충격적이었다. 예행연습을 마친 뒤 흉기를 수건으로 감싸고 집 밖을 나와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딱히 정한 살해 대상은 없었다. 그저 흉기를 들고 휘둘렀다. 행인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려 1시간 가량 이어졌다. 무서워서 도망가는 이들의 뒤를 쫓아 추격하기도 했다.
A씨의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흉기를 소지한 채 편의점에 들어가 "테스트 해야돼, 테스트 어떻게 하냐"고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묻는 순간, 비극은 시작됐다. 학생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자 곧바로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현장에 함께 있던 손님에게도 중상을 입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묻지마 살인'이었다.
취업 준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하게 생활하던 청년은 그렇게 20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A씨는 범행 이후 현장 인근에서 곧바로 체포됐다.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A씨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씨는 경찰 수사 과정부터 재판 선고까지 수개월동안 묵비권을 행사하며 단 한 차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줄곧 침묵을 지켰다.
재판정에 선 그의 표정은 싸늘하고 냉담했다. 가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이 진술을 거부하고 있어 이 사건의 연루 경위 등을 확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최후 진술도 하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허정훈)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5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집에서 흉기로 찌르는 연습을 하는 등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흉기를 수건으로 감싸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행인 등 불특정인들을 상대로 쫓아가 범행하려고 시도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에게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아 범행 동기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며 "재범 가능성이 매우 높아 피고인을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범행 당시 상황에 맞지 않은 언어 행동을 한 점 등을 종합할 때 객관적 파악 및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판단, 매월 1회 이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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