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원대, 6·25때 전사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74주기 추모예배
“고귀한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은 목원의 정신”
- 박찬수 기자
(대전ㆍ충남=뉴스1) 박찬수 기자 = 목원대학교가 19일 대학 채플에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1922~1950년) 전사 74주기 추모예배를 진행했다. 6·25전쟁에서 산화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감리교대전신학교(목원대 전신)의 창립 이사였던 서위렴(윌리엄 얼 쇼) 선교사의 아들이다.
권진호 신학대학장의 인도로 진행한 이날 추모예배에는 대전지방보훈청 강만희 청장과 목원대 이희학 총장,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목원대는 매년 9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를 열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교육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희학 총장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은 목원의 정신과 깊이 연결돼 있다”며 “목원대는 앞으로도 그 가치를 기억하고 전파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22년 6월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에서 해군사관학교(해안경비대) 초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또 해방 후 한국 정부 수립 전 미군정청(점령지 군사정치 기관)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1947년 전역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돕겠다”며 1950년 미국 해군에 재입대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여했다.
그는 한국 지리에 밝고 한국말을 잘했던 덕에 해군 소속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복작전에서 정탐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50년 9월22일 오전 정찰을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유엔군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가 전사한 일주일 뒤 서울 탈환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성을지무공훈장에 추서됐고,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받았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아버지인 서위렴 선교사는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자 5955명으로부터 1만4500달러를 모금해 목원대에 해밀턴기념예배당을 세웠다. 현재 목원대 채플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기념 예배당, 기념 흉상, 기념비 등이 세워져 충청권 호국보훈 교육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 은평구에 추모공원과 동상이 건립됐으며 2014년엔 해군사관학교에 흉상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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