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한테 성추행 당했다"…법정 간 초등생 딸의 '거짓말'
판사 앞 "술 마시는 아빠 싫어 한 말" 피해 부인
法 "父 처벌 부담…그간 진술 신뢰" 징역형 집유
- 이시우 기자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아빠에게 성추행당한 딸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기억을 신뢰했다.
A씨(42)는 지난 2022년 9월 술에 취해 귀가한 뒤 잠들어 있던 초등학생 딸 B양을 성추행했다.
범행 이튿날 딸에게 사과하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은 흘렀다. 이듬해 B양이 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피해 사실을 알려 A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피해자인 B양도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B양은 교사와의 상담에서부터 경찰, 검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아빠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의사도 분명히 표시했다.
하지만 성범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피해자의 말이 바뀌었다. B양은 재판에서 "매일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아빠가 싫어서 허위 진술했다"며 피해를 부인했다.
유일한 증거와 다름없는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됐지만 검찰과 변호인들은 말을 아꼈다. 재판 이전과 이후의 진술 신빙성에 대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랐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재판에 이르게 되자 피해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허위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형사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무고나 위증의 죄책을 부담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수사기관에서의 일관된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딸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며 "딸의 진술이 번복돼 당황스럽지만 여러가지 사실을 토대로 신빙성 여부를 잘 판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A씨도 재판부에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등을 제출하며 "당시 만취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선처를 바랐다.
법원은 아빠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딸이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경호)는 지난 29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진술로 인해 피고인에게 중형이 선고되고 가족들이 불행을 겪게 될까봐 상당한 부담과 중압감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법정에서 진술 번복이 이전 진술의 신빙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A씨의 유죄를 인정한 재판부는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피고인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피해자의 진술 번복을 근거로 법을 현혹하려고 한 죄질이 나쁘다"며 "실형을 선고하거나 법정 구속도 적극 고려함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형량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죄는 법정형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장기간 구속할 경우 가족 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 있고, 가족들의 생계나 피해자의 건강한 성장에 또 다른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며 "바람직한 처벌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점을 지우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4년간 형 집행을 유예했다. 또 각각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및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수강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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