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사진전…KAIST 학생들, 실패 경험 공유 눈길
'같은 가지에 혼자 시든 잎'·'누군가 일으켜 준다면' 등
11월1일 실패 경험 공유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
- 김태진 기자
(대전=뉴스1) 김태진 기자 =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들이 학업 중 실패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KAIST 실패연구소는 23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대전 본원 창의학습관 1층 로비에서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연다.
각종 수업과 연구로 바쁜 KAIST 재학생 31명은 일·성장·생활·회복력 등 네 가지 주제 중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해 일상에서 실패를 느낀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함께 당시의 생각을 기록한 메모를 전시했다.
전시 작품들은 사진을 매개로 연구 참여자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표현하게 하고 이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인 ‘포토보이스’를 적용한 연구를 통해 수집됐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경험하는 실패의 특성을 규명하고 건강한 개입 방안을 모색한다.
작품들 중 임재근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생의 '같은 가지에 혼자 시든 잎'이란 제목의 사진이 눈에 띈다.
임 박사과정생은 사진과 함께 '카이스트라는 좋은 학교에 있다 보니 졸업한 선배도, 동기들도 모두 우수하다. 좋은 직장, 번듯한 미래 계획, 뭐든 척척 해내는 진취성, 그런 동문 사이에 있는 게 자랑스럽지만 연구와 삶에서 실패를 만날 때마다 혼자 시들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싱싱한 잎들 사이 혼자 시든 이 노란 이파리처럼'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작가는 삶과 학업에서 실패를 경험하면서 홀로 느낀 무력감을 사진에 담은 것으로 보인다.
김승범 KAIST 수리과학과 학사과정생의 '도서관을 나서며'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이미 기말시험 준비를 시작한 학생들을 보았고, 그 순간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의 자리는 시험이 다가올수록 점점 채워지는데, 나는 과연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걸까. 이 장면이 '네 노력이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메모가 돼있다.
이 작가는 평소 주변에서 천재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란 카이스트 학생도 일반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시험과 경쟁에서 느낀 압박감 등 감정을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누군가 일으켜 준다면'이라는 제목의 이지현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생은 작품에 "아침 등굣길에 잔디밭에 누워있는 의자를 보았다"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넘어진 의자의 모습이 실패한 사람 같았다"고 메모를 남겼다.
또 "지금은 비록 누워있지만 네 다리 성하고 부서진 곳 없으니 누군가 일으켜 준다면 금방 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라며 "실패한 사람도 그럴 것이다"라고 사진 촬영 당시의 감정을 사진으로 전달했다.
이밖에 72개의 장면은 온라인에서 아카이브 형태로 공개하고 있다. KAIST는 실패주간이 끝난 뒤에도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온라인 포토 다이어리를 운영해 실패의 순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계속 게시할 계획이다.
KAIST 실패연구소 관계자는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느끼는 실패감에는 어느 정도의 보편성이 나타난다는 사실과 동시에 같은 실패라도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성호 KAIST 실패연구소장은 ”성취와 성공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KAIST 학생들의 일상과 인생 여정에도 실패와 역경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 속에서 함께 배울만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며 ”캠퍼스 곳곳에 마련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실패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 밖에도 11월1일에는 KAIST 학생들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가 열린다.
이 행사는 학생동아리 아이시스츠(ICISTS)와 함께 진행하며, 재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학업 과제뿐만 아니라 연애·진로 등 인생의 과제에서 실패한 경험담을 발표한다.
인기상(청중 현장투표 기준 최다 득표자), 마상(가장 마음 아픈 실패 경험 발표자), 떡상(가장 응원하고 싶은 발표자), 연구대상(자신의 실패를 가장 흥미롭게 풀어낸 발표자) 등 재치 있는 수상 부문을 만들어 다소 경쟁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분위기에 익숙한 KAIST 학생들이 유쾌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안전한 방식으로 동료들과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리사 손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버나드 컬리지 심리학과 교수와 김수안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초청 ‘KAIST 실패세미나’가 열린다.
이 행사는 다양한 분야 리더들의 경험과 관점을 공유하는 실패강연 시리즈로, 4회를 맞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실패를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 청중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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