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해제 후 첫 설 명절…모처럼 웃은 전통시장(종합)
시장 찾은 시민들 양손에 과일·채소 등 제수용품 한가득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高 고통 호소도 "매출 10~15% 줄어"
- 허진실 기자, 한송학 기자, 노경민 기자, 유재규 기자
(전국종합=뉴스1) 허진실 한송학 노경민 유재규 기자 = “확실히 거리두기 해제하고 나서는 숨통이 트여요. 손님들을 보니 이제야 ‘대목이구나’ 싶네요”
설 연휴 전날인 20일 오후 3시. 대전 서구 괴정동 한민시장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명절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 양손에는 가족과 함께 먹을 과일과 채소, 제사상에 올릴 제수용품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장을 보러 온 주부 정모씨(54)는 “저번 추석 때까지는 가족들이 코로나가 위험하다고 판단돼 자체적으로 모이지 않았다”면서 “올해는 오랜만에 마음 놓고 만나는 만큼 음식도 푸짐하게 차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물가정보 조사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이 25만4500원, 대형마트가 35만9000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전통시장이 마트에 비해 40%가량 저렴하게 장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도 농산물 가격이 작년보다 떨어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민시장에서 사과(부사 상품)는 5개에 1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지난해 서구청에서 조사한 ‘명절 성수품 가격 동향’과 비교해볼 때 30% 정도 저렴한 가격이다. 또 다른 대표 제수용품 배(신고 상품) 역시 3개 1만원으로 작년보다 10% 정도 하락했다.
설 대목을 맞은 상인들의 얼굴은 전에 없이 밝았다. 한민시장에서 37년째 과일장사를 하고 있다는 박모씨(70)는 “사과와 배 가격이 내려가면서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찾는다”면서 “작년보다 시장에 사람도 많다보니 매출도 늘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21일 경남 진주의 대표 전통시장인 중앙유등시장(중앙시장) 역시 이른 아침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중앙시장은 평소에도 매일 새벽시장이 열려 사람들로 많이 찾지만 이날은 명절 장을 보기 위한 시민들이 몰리면서 평소보다 붐볐다. 노부부,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온 부부, 장 보기보다는 시장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러 온 사람 등 명절 전 대목 시장은 생동감이 넘쳐났다.
특히 떡과 부침개 등 차례 음식을 파는 상가가 모여 있는 골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묵과 튀김류를 파는 포장마차들은 줄을 서서 음식을 먹거나 포장해 가져가면서 음식은 이미 동이 났다. 포장해 갈 튀김 종류와 전화번호를 적은 박스 종이에는 글씨가 빼곡했다.
튀김류를 파는 상인은 “팔 전이 없다. 지금 튀기는 음식들도 이미 주문해 놓고 가서 손님에게 줄 것이 없다”며 “명절 전에는 전이 인기가 좋아 없어서 못 판다. 집에서 전을 하기보다는 사 가는 게 편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70대 남성은 “명절 전에는 항상 새벽시장에서 장을 본다. 새벽시장은 가격도 저렴하고 제품도 좋다. 마트에서 살 물건을 사고 전통시장에서 사야 하는 물건은 새벽시장에 와서 구매한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11시께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못골종합시장은 지난 2년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로 맞은 설의 시장 내 풍경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치솟은 물가임에도 ‘경기한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대목이다.
시장에 들어서자 곳곳에 풍겨오는 떡내음, 나물냄새 등이 진동해 명절의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켰다.
거리두기 해제 후 맞는 설인 만큼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손님들을 끌여들이기 위한 저마다의 상품홍보 전략을 꺼냈다.
생선가게 주인들은 ‘싱싱하다’로, 떡집 가게 주인들은 ‘갓쪘다’로, 나물가게 주인들은 ‘갓캣다’ 등 짧고 굵직한 단어들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제각각 내뱉었다.
코로나19로 ‘맛보기’를 하지 못했던 과일 상인은 올해부터 사과와 배를 깎아주는 서비스를 다시 시작하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전했다.
과일가게 업주는 "(코로나19 이후에도)힘들게 왔는데 시원한 배 한쪼가리 주는게 좋습니다"라면서 웃기도 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후 설 명절로 만난 상인들의 모습은 활기찼고 따듯한 마음씨도 여전했다. 행복을 사고 파는 한 상인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코로나19 없는 명절(설)만 같아라”라고 말했다.
반면 ‘3고 현상’(고물가·고금리·고환율)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인해 힘들어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설 대목임에도 부산 부전시장은 옛날처럼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다. 일부 상인들은 시장을 오가는 인파가 지난해보단 늘었다고 하지만, 쉽게 지갑을 열지는 않아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시장에서 닭 정육 가게를 하는 손한진씨(40)는 “코로나19가 심했던 작년 추석 때가 오히려 장사가 잘 됐던 것 같다”며 “명절 앞이라고 해서 장사가 잘 되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대추, 밤 등 제수용품 도매업을 하는 구자임씨(48)는 “물가가 올라 소비자들의 소비율이 떨어진 것이 실감 난다”며 “우리도 10~15% 정도 매출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만난 부산 시민 김정희씨(49)는 “올해 제사는 최대한 간소하게 지내기로 했다”며 “경기가 어렵고 물가가 올라 제수용품 구매도 최소한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zzonehjsi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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