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쐈다" 자백에…21년 만에 드러난 대전 은행강도살인 전모

'범행 부인' 이승만 자백으로 퍼즐 맞춰져
경찰, 2일 강도살인 혐의 적용 검찰 송치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대전=뉴스1) 이시우 기자 = 21년 전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의 전체 윤곽이 드러났다.

지난 25일 검거에 성공한 경찰은 2명의 피의자를 분리해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해 왔다. 당초 범행을 부인하던 주범 이승만(52)도 1일 모든 범행을 자백했다. 오는 2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인 경찰은 이날 그동안의 수사 상황을 공개했다. 경찰이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21년 전 사건 경위를 정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승만, 이정학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졸업 이후에도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정학보다 1살 많은 이승만이 둘 사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음반 도매업을 하던 이승만은 불법 녹음 등으로 적발되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수감 생활까지 하게 되자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이승만은 출소한 뒤 "국가에 대해서 동일한 이익을 취하겠다"며 범죄를 저질렀다. 이승만은 별다른 직업없이 날치기 등으로 생활을 이어가던 이정학을 끌어들였다. 날치기와 차량절도 등을 일삼던 이들은 범죄가 적발되지 않자 은행 강도를 계획했다. 이정학은 당시에 대해 "간이 커졌다"고 표현했다.

이들은 은행 창구에 침입해 돈을 빼앗기로 마음먹고 뱀행을 모의했다. 총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경찰관의 총을 빼앗기로 했다. 2001년 10월 14일, 오후 9시 30분께 대전 서구 월평동에서 시동이 걸린 채 추자돼 있던 흰색 쏘나타를 훔쳤다. 이정학은 앞서 차량 절도 등으로 처벌받은 이력이 있었다. 훔친 차량을 운전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이승만은 2시간 30분 뒤, 대덕구 비래동의 한 골목길에서 도보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발견했다. 이승만은 차량으로 경찰관을 들이받았다. 이정학이 쓰러진 경찰관에게 다가가 공포탄 1발과 실탄 4발이 장전된 권총을 빼앗았다.

총기 탈취에 성공하자 범행 장소를 물색했다. 은행 주변을 서성이다 아침마다 현금수송차량을 목격했다. 수송차량이 주기적으로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범행 대상을 현금수송차량으로 수정했다.

이들은 현금 탈취, 도주 경로 등을 모의하고 도주에 사용할 차량도 훔쳐뒀다. 같은 해 12월 21일 오전, 훔친 차량을 타고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했다. 도주에 사용할 차량은 300m 떨어진 건물 주차장에 세워뒀다. 오전 10시께 현금수송차량에서 현금을 옮기려는 순간 권총을 든 이승만이 은행 직원 등을 권총으로 협박했다. 이승만은 은행 출납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저항하자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은 직원의 몸에 박혔고 또다른 한 발은 몸을 관통했다. 총에 맞은 직원은 끝내 숨졌다. 이승만은 당시 상황에 대해 "몇 발을 쐈는지 몰랐다"고 말했지만 탄창은 비어있었다. 이승만은 뉴스를 통해 자신이 쏜 총에 맞은 직원이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총성이 울리는 사이 이정학은 3억 원이 든 돈가방을 타고 온 차에 실었고 이승만을 태워 달아났다. 미리 준비해 둔 차량에 돈가방을 옮겨 실은 이승만은 자택 인근 야산에 권총과 돈가방을 묻었다. 이정학은 택시를 타고 대전역으로 이동한 뒤 자택이 있는 대구로 내려갔다. 도주하는 동안 경찰과 마주친 적은 없었다.

백기동 형사과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대전경찰청에서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미제사건 피의자 검거 관련 수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22.8.3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이들이 훔친 돈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눴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눠가진 돈의 액수도 진술에 차이가 난다. 이승만은 각각 반으로 나눴다고 하는 반면, 이정학은 자신이 9000만 원을 이승만이 나머지를 가져갔다고 했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훔친 돈을 나눠가질 때를 제외하고는 21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은 범행 몇 해 뒤 숨겨둔 총기를 망치로 부숴 여러 곳에 나눠 버렸다. 훔친 돈은 주식 투자 등에 사용했지만 결국 모든 돈을 탕진하고 일용직이나 1~2년씩 일자리를 얻어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도피 생활 중 단 한 차례도 경찰의 수사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뜻밖의 장소와 시간에서 이정학의 흔적이 경찰 수사망에 걸렸다. 이정학은 지난 2015년, 충북의 한 불법 게임장을 방문했다. 단속반이 나타나자 황급히 자리를 떠났지만 그 자리에는 이정학이 피우던 담배꽁초가 남겨져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한 유류품에 대해 유전자 분석을 맡겼고 담배꽁초에 묻어 있던 이정학의 유전자 정보는 범죄현장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갔다.

마침 대전경찰은 미제사건 전담팀을 구성해 장기 미제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돼 수사가 가능했다.

경찰은 2017년 9월 증거물 보관소에 묵혀 있던 마스크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16년 전 검출되지 않았던 마스크에서 이번엔 신원을 알 수 없는 유전자가 검출됐다. 함께 수거한 손수건에서도 동일 유전자가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유전자가 충북의 불법 게임장에서 발견된 유전자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해당 게임장과 관련성이 있는 1만 5000여 명을 추려 일일이 범행 연관성을 확인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유전자의 주인이 이정학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이정학에 대한 과거 행적과 주변인 조사를 통해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 지난달 중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25일 대전 모처에서 검거했다. 이정학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승만이 공범으로 지목됐고 경찰은 강원 정선에 있던 이승만을 긴급체포했다. 사건 발생 7553일만이다.

경찰은 2일 이승만, 이정학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송치 이후에도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이 보강 수사를 마친 뒤 기소하게 되면, 21년 동안 열려 있던 수사 파일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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