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염 휩싸인 고운사 목욕탕서 버틴 소방관 10명, 동료들이 극적 구조
화마 휩싸이기 직전 현장 지휘관, 대원에 콘크리트 목욕탕 대피 지시
'소방관 구하는 소방관' 경북119특수대응단 RIT, 고립 동료 전원 구조
- 남승렬 기자

(안동·포항·의성=뉴스1) 남승렬 기자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천년고찰 고운사가 전소되는 안타까운 과정에서 사찰을 끝까지 지키려던 소방관들이 동료들에게 극적으로 구조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1일 경북소방안전본부와 경북119특수대응단에 따르면 화마가 고운사를 덮치기 전인 24일 오후 의성 단촌면 등운산 자락 고운사에는 현장 지휘관인 이종혁 경산소방서 재난대응과장과 대원 10명이 긴장감 속 화세(火勢)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당시 이 과장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사찰 곳곳의 지형지물을 살피다 콘크리트 벙커 같은 건물을 발견했다. 목욕탕 시설이었다.
이 과장은 문이 개방된 데다 물도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만일의 사태에서 몸을 피신할 긴급 대피 장소로 목욕탕 건물을 염두에 두고, 다음 날(25일) 오전 대원 10명을 모두 목욕탕 건물로 집결시킨 뒤 "내가 '전 대원 즉시 목욕탕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하면 앞뒤 보지 말고 목욕탕으로 내달려라"고 당부해뒀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고운사 일대는 강풍이 불어 이 과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먼저 스님과 사찰 관계자, 산림청 관계자들을 사찰 일대에서 내보내고 화세를 가늠하며 대응에 나서려는 찰나 불길은 순식간에 고운사를 덮쳤다.
대원들에게 즉시 공기호흡기를 챙기고 목욕탕으로 대피하라고 주문한 이 과장은 모든 대원의 대피를 확인한 뒤 목욕탕 문을 닫았다.
그는 경북119특수대응단 소속 RIT(신속동료구조팀)와 진화 인력을 최대한 빨리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뒤 공기호흡기의 산소를 최대한 아껴 쓰며 초조해하는 대원들을 진정시켰다.
생사가 오가는 동료들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RIT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RIP는 '소방공무원 현장 소방 활동 안전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장 활동 중 위험에 처한 소방관을 구조하기 위해 구성되는 전문 구조팀으로, '소방관을 구하는 소방관'으로 불린다.
현장의 위험 정보를 파악하고 대원들의 활동 사항을 모니터링해 소방관의 실종과 고립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돼 동료를 구출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RIT팀으로 고운사에 출동한 경북119특수대응단 3팀 소속 구조대원 김남석 팀장, 황기하·박두열·이윤호·강대현·황시철·이태건 대원은 3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고립된 동료들을 구출하고 한명의 인명 피해 없이 철수할 수 있었다.
경북119특수대응단 관계자는 "비록 고운사는 지키지 못했지만 현장 소방대원의 신속한 판단과 RIP의 기민한 대처로 단 한명의 인명 피해 없이 철수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국민과 동료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pdnam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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