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소선 만날 수 있는 공간 되길"…대구서 전태일 열사 옛집 개관
시민 성금으로 옛집 복원…54주기 추모식도 함께 진행
- 남승렬 기자
(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불을 지핀 대구 출신의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1948~1970년)의 54주기 추모식과 열사가 생전 가족과 함께 살았던 옛집 개관 기념행사가 13일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에 자리한 한옥에서 열렸다.
행사가 열린 남산동 한옥은 전태일 열사가 생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다'고 일기장에 적은 유년 시절 옛집이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성금 모금 운동을 통해 기금을 마련, 최근 복원을 완료했다. 열사는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교 강당 자리) 재학 시절인 1962~1964년쯤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섯 가족이 살았던 셋방은 함석지붕을 이고 있던 약 3.8평(12.5㎡)의 공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열사의 가족은 이 공간에서 두 대의 재봉틀을 갖추고 봉제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1929~2011년)가 당시 동산병원 담장에 걸려있던 구호품과 헌 옷을 사 오면 열사와 동생들이 실밥을 뜯고 다림질했다. 그 옷감을 아버지가 재단해 새 옷을 만들어 놓으면 이 여사가 되팔아 생계를 잇던 시절이었다.
열사는 학교 가기 전 오후 4시 30분까지 봉제를 하면서도 벽에 영어 단어를 붙여 놓고 외울 만큼 배움 열기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1963년 11월 학업을 중단하게 됐고, 1964년 2월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대구를 떠났다.
2015년 유족과 열사 지인들의 증언으로 시민들은 이 집의 존재를 알게 됐다.
집의 존재를 알게 된 시민들과 시민단체는 "전태일의 고향인 대구에서 전태일의 옛집을 복원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했고, 그 목소리가 모여 2019년 3월 '전태일 옛집 살리기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시민 모금 운동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2020년 열사 50주기에 집을 매입하고, '전태일 문패'를 달았다. 2023년 허물어져 가던 집을 복원하기 위한 2차 모금 운동을 시작하고 공사를 거쳐 최근 복원을 완료한 뒤 이날 개관 행사를 갖게 됐다.
비록 전태일과 가족이 살았던 셋방은 사라졌지만, 그늘과 그늘을 옮겨 다니며 산 전태일 삶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은 이 집은 새로운 한옥 건물로 재탄생해 주민과 관광객을 맞는 장소와 전태일 기념관 형식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현재 셋방이 있던 터는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의자가 설치됐다. 집주인이 살았던 한옥 본채에는 열사의 생전 사진 등과 조영래 변호사를 비롯해 생전에 인연이 있던 인물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시민이 만든 기적, 열여섯 살 전태일의 귀향'을 주제로 열린 이날 54주기 추모식과 옛집 개관식은 송필경 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민주당 의원, 이희규 옛 청옥고등공민학교 교사, 이승렬 전 영남대 교수회의장, 신명여중 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 낭독과 기부자 축사, 축하공연, 시 낭송, 기념식수로 진행됐다.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전 의원은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오늘만큼은 여기에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주신 대구 시민들께 감사드리고, 이곳이 전태일 오빠를 만나고 이소선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태일의친구들 측은 "전태일 옛집 복원은 오로지 시민 성금과 뜻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라며 "열사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열사가 남긴 인간 존엄, 노동자 인권, 평등사상을 이어가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dnam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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