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농약 사건 한 달' 미스터리…경로당 노인들 '불화'가 원인?
"사건 실마리 풀 증거 다수 확보…이달 말 전 발표"
"노인 거주공간 포화상태…갈등 생길 수 밖에"
- 신성훈 기자
(봉화=뉴스1) 신성훈 기자 = 경북 봉화 농약 음독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유의미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며 막바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5일 "이달 말 전까지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발표 전까지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초복인 지난달 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의 경로당 회원 41명이 점심으로 오리고기를 먹고 이 중 A 씨 등 4명이 경로당에 들려 커피를 나눠 마신 후 이날 오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차례로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사흘 후인 18일에는 80대 B 씨가 같은 증세로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병원 검사 결과 앞서 쓰러진 A 씨 등 4명의 위 세척액에서 살충제 성분의 농약인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2가지가 검출했다.
중태였던 할머니 5명 중 3명은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으나, 1명은 여전히 중태이며 마지막에 쓰러진 B 씨는 지난달 30일 숨졌다.
B 씨는 사건 발생 사흘 후인 7월18일 봉화군에서 시행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4시간 근무를 마친 후 '병원에 간다'며 나와, 마을 인근에서 노인들과 함께 화투를 쳤다.
이후 은행에 들러 자기 재산 중 일부를 찾아 가족에게 전달하고,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던 중 쓰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B 씨의 위 세척액에서는 앞서 쓰러진 4명의 위 세척액에서 검출된 농약 성분 외에 다른 살충제 2개와 살균제 1개 성분이 추가로 검출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현장 감식을 통해 감정물 400여점과 주변 CCTV, 블랙박스 등 86개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또 관련자 등 70여명에 대한 면담 조사를 실시하고,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DNA 검사와 피해자들의 집을 수색하기도 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사건 당일 B 씨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경로당 운영 시스템을 놓고 회원간 불화가 있었다"는 진술과 함께 살충제가 든 용기 등 사건의 실마리를 풀 유의미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이 사건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과거 발생한 여러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015년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은 상주시 공성면의 한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7명 중 6명이 냉장고에 든 사이다를 마신 후 2명이 숨지고 4명이 중태에 빠졌다.
수사 결과 화투를 치다 피해자들과 다툰 80대 여성이 이들을 살해하기 위해 마을회관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에 농약을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발생한 '청송 농약 소주 사건'은 청송군의 한 마을회관에서 주민 2명이 농약이 든 소주를 마셔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 사건의 용의자인 70대 남성은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8년 '포항 농약 고등어탕' 사건'은 당시 아침식사로 고등어탕을 먹은 주민 A 씨가 구토 증상을 보였다. 경찰 수사 결과 평소 주민들과 갈등을 빚던 60대 남성이 고등어탕에 농약을 넣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지역 대학교 교수 C 씨(사회복지학과)는 "고령화로 노인들의 거주 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단체생활을 하는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이런 사건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노인들이 직접 경로당 운영을 하게 되면서 패가 갈리고 불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지자체가 경로당 운영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ssh484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