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앗아간 문경 산사태…"돈 많이 벌어 태국 가고 싶어했는데"
'문경서 희생' 여성 이주노동자, 4년 전 남편과 한국 왔다 참변
"딸 3명은 태국에 두고 성실히 일만 했는데"…빗물 속 발인
- 남승렬 기자, 공정식 기자
(문경=뉴스1) 남승렬 공정식 기자 = "열심히 돈 벌어 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태국 할머니 손에 자라는 세 딸은 어떡하라고…."
하늘도 무심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운 모국을 떠나 한국에서 돈을 모아 태국에서 집 한채 장만하려는 '코리안드림'은 산산히 깨졌다.
기록적 물난리가 난 15일 오전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에서 산사태로 주택이 무너져 숨진 태국 출신 33세 여성 이주노동자 A씨는 동갑내기 남편과 2019년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
물난리가 났을 당시 A씨와 남편, 또다른 태국인 부부 등 4명은 빗소리에 놀라 숙소 윗 편에 자리한 공장이 걱정돼 밖으러 나왔다.
큰 비라는 걸 직감한 A씨는 옷가지를 다시 챙겨 입으러 숙소로 돌아갔다 때마침 숙소를 덮친 토사 등에 매몰돼 숨졌다.
A씨는 10년 전쯤 결혼해 딸 셋을 두고 있다. 딸들은 태국에 있는 할머니가 키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화장을 치른 18일 오후 문경에는 또다시 집중호우와 함께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됐다.
화장장에는 A씨 남편과 평소 태국인 동료, A씨 등을 고용한 농장주 등 10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무심하게도 하늘에서는 그날처럼 빗줄기가 하염없이 쏟아졌다.
농장주 부부는 "태국에서 와 성실히 일만 하고 모국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재난영화에서나 볼 법만 일이 우리 곁에 일어나니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이후 사흘 동안 펑펑 울어 눈이 충혈된 A씨 남편은 영정사진을 수시로 어루만지며 애써 웃음을 짓다 금새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평소 A씨 부부의 지인으로, 한국에서 서로 의지했다던 다른 태국인 결혼 이주여성은 "한국 돈으로 5000만원 정도 모으면 태국에서 작은 집 한채 지을 수 있다"며 "이 꿈을 안고 2019년 한국에 온 A씨가 성실히 일만하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태국 고향에도 가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숨진 A씨가 내년쯤 남편과 태국에 간다고 말해 왔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너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화장을 마친 A씨 유해는 태국대사관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다.
pdnam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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