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년 농사 다 망쳤다"…우박 피해 농민의 한숨
사과 착색 잘돼 추석 앞두고 기대 컸는데…
하소연 할 곳은 행정기관뿐…지원 절실
- 피재윤 기자
(안동=뉴스1) 피재윤 기자 = "성한 게 없어요. 1년 농사 다 망쳐 어떻게 살아야 할지…"
20일 경북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임영진씨(75)의 하소연이다.
임씨가 살고 있는 마을은 어귀에서부터 전날 폭탄처럼 쏟아진 우박 피해의 흔적이 목격됐다.
산 비탈면 곳곳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있고, 수확을 코 앞에 둔 벼는 논바닥에 새파랗게 쓰러져 있었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펼쳐진 사과밭 역시 악몽 같았던 전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을 경로당 앞에는 피해를 입은 주민 10여명이 모여 조사하러 나올 공무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씨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온 동네가 난리"라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임씨는 "어제 집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따닥 따닥'하는 소리가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풍이나 집중호우 때 한두번 피해를 입은 적은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사과 농사를 짓는 동안 우박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사과밭 수천평이 단 10여분 만에 초토화됐다"고 허탈해 했다.
임씨의 사과밭을 둘러본 결과 성한 사과를 찾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사과의 착색이 잘된데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있어 농민들의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는 "농민들이 하소연할 곳은 행정기관 뿐이다. 1년 내내 농사에 매달렸는데, 다 굶게 생겼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농가가 빚에 허덕이는 것이 현실"이라며 "피해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동시의회 김백현·권기탁 의원은 "피해현장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상품이 될만한 것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우선 사과를 주스공장에 납품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권영세 안동시장도 이날 예정된 경주 일정을 취소하고 우박 피해 농가를 찾아 상황을 살폈다.
경북도 관계자는 ""정밀 조사가 끝나면 피해 면적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농작물 관리 요령 등을 설명하는 등 2차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3시20분부터 1시간20여분간 안동, 문경, 예천, 청송 등 경북 북부지역에 소나기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졌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인 지름 0.5~2㎝의 우박은 지역에 따라 강한 돌풍과 함께 1~2차례 쏟아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최대 3㎝ 크기의 우박이 발견되기도 했다.
'우박 폭탄'으로 안동 600㏊, 문경 471ha, 예천 73ha, 청송 15ha 등 1159ha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으며 사과 농가의 피해가 960ha로 가장 컸다.
ssanae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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