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 기다리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생활고·암투병 끝에 사망

항소심 선고 연기된 다음날 숨져
사망 5명 중 3명 무연고자…배상 받아도 국고 귀속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관계자 등이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손해배상 소송 선고 공판 참석을 마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1.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국가 배상을 기다리던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생활고 탓에 제대로 항암치료를 받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 생존자들은 '국가의 타살'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3일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피해자 신영준 씨(62)가 이날 새벽 부산 연제구 자택에서 숨졌다.

2022년 7월 식도암 2기와 간세포암을 진단받아 투병 중이던 신 씨는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는 피해자 25명과 함께 2021년 12월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년 만인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1인당 8000만원에서 11억여원을 배상할 것을 국가에 명령했다.

그 사이 암이 전이된 신 씨는 그간 값비싼 비용 때문에 주저했던 항암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1심 판결에 국가는 인정 금액이 높게 측정됐다며 항소했고, 또다시 기나긴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1년을 기다린 신 씨는 사망 전날인 지난 12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었으나 한 차례 기일이 연기됐고, 결국 항소심 선고 결과를 받아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신 씨는 1975년 9월 26일 친구들과 운동하고 부산역 화장실에서 나오던 중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의해 차에 실려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그는 7년간 형제복지원에서 갖은 구타와 노동 등 가혹행위를 버텨오다 친구들과 도망쳐 나오면서 1982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 씨와 형제복지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박경보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병원에서 면역항암을 권유했는데 비용을 걱정하며 일반항암을 이어오다 부작용으로 혈소판이 떨어지고 간수치가 높아졌다"며 "영준이는 최근까지 '내가 죽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겠냐'며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항암 치료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가는 지난달 27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배상 소송 2건에 대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며 상고했다. 이처럼 배상이 지연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의 사망이 잇따르면서 국가의 상소가 '2차 가해'라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달 17일에는 신변을 비관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 씨(52)가 부산시청 앞에서 자살기도했다가 닷새만에 깨어난 일도 있었다. 1·2심에서 승소한 김 씨는 국가가 상고할 것에 불안을 느끼다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회에 따르면 신 씨와 같이 국가배상과 사과를 기다리던 중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는 총 5명이다.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직계 비·존속이나 배우자, 4촌 이내 방계 혈족 등이 상속인이 될 수 있지만, 이중 신 씨를 포함한 3명은 무연고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국가배상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박경보 대표는 "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보듬는 역할마저 방기하고 있다"며 "영준이의 죽음은 국가의 타살"이라며 호소했다.

ase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