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토 논란' 부산 도심 미군부대 대형 화재에 시민 '불안' 고조

인근 학교 등굣길 학생들 '마스크'
주한미군지위협정 따라 치외법권…경찰·소방 수사 못해

24일 오후 6시 31분쯤 부산 동구 범일동 미군부대 55보급창에서 화재가 발생,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화재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인력 163명, 장비 51대를 투입해 화재를 진압 중이다. (독자 제공) 2024.10.24/뉴스1 ⓒ News1 장광일 기자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검은 연기가 구름처럼 솟아올랐어요, 무섭다는 아이 말에 커튼도 쳤죠."

부산 동구 도심에 위치한 주한미군 55보급창에서 24일 오후 6시 31분쯤 큰불이 발생한 가운데 매캐한 연기 등으로 인근 주민과 학교 등에서 큰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염토 문제가 불거졌던 지역으로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정확한 화재 원인 조사가 뒤따라야 하지만 주한미군 관할 구역인 탓에 경찰과 소방당국이 직접 조사를 벌이지 못해 주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25일 오전 찾은 부산 동구 범일동 55보급창에서는 멀리서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하늘 높이 회색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너편 대단지 아파트 앞에는 슬리퍼와 간편한 옷차림의 주민들이 나와 바람에 흘러가는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동구 주민 주미경 씨(60대)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횡단보도에 잠깐 서 있어도 잔기침이 난다"며 "등굣길에 보니 평소보다 마스크 쓴 학생들이 많던데 몸에 유해한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1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전날 구름처럼 피어오른 검은 연기를 보고 아이들이 무서워해 커튼을 쳤다"며 "연기가 자욱하고 아직도 잔불 정리 중이라고 하니 놀랬던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25일 오전 부산 동구 범일동 미군 55보급창 창고동 화재 현장에서 소방이 잔불을 정리하고 있다.2024.10.25/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이에 성남초는 이날 아침 학생들을 대상으로 화재 현장 접근 주의 및 마스크 착용 안내와 건강 상태 점검을 실시했다.

55보급창 맞은편 한 연수원에서도 화재 시 발생하는 분진과 유독가스 등을 막기 위해 창문과 창을 막고, 연수 중이던 인원들을 긴급 대피시키기도 했다.

전날 오후 6시 31분쯤 동구 범일동에서 발생한 55보급창 냉동창고 화재는 약 13시간 만인 이날 오전 7시 24분쯤 초진됐다.

한 때 대응 2단계까지 내려졌으나 큰불을 잡고 연소 확대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모두 해제됐다. 소방은 현재 잔불을 정리하고 있으나 완진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냉동창고의 면적이 큰 데다 내부에서는 배관 등 공사 작업이 이뤄지던 중이어서 산적해 있던 공사 자재, 우레탄, 고무 등 가연성 물질이 불길을 더욱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다량의 분진과 검은 연기가 뿜어올라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번져나갔고, 불안을 느낀 주민들의 관련 신고가 소방에 30여건 접수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확한 화재 원인 조사, 피해 규모 파악 등 후속 조치는 쉽지 않아 보인다.

55보급창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 군수 물자를 보관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가 1950년 8월 이후로는 부산항으로 반입되는 미군 장비를 일시적으로 보관·저장해 전국의 미군 부대로 보급하는 창고다.

군사 보안시설이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우리나라 경찰과 소방당국이 화재원인 등 조사를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 측은 자체 조사 결과를 경찰이나 소방당국에 보고할 의무도 없다.

전날 화재 당시에도 경찰은 미군의 통제로 인해 진입이 불가해 화재 상황 파악에 나서지 못했다.

다만 미군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를 가진 냉동창고가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이자 일시적으로 우리나라 소방 장비 51대와 소방력 163명을 투입을 허용했고, 자체 소방대 차량 3대, 인력 11명이 함께 화재 진화에 나섰다.

인근 카페 주인 이 모씨(30대)는 "오염토 문제도 시끄러웠던 곳인 데다가 주변에 초등학교, 시장, 대단지 아파트가 즐비해 있어 일반 시민 피해도 만만치 않은데, 한국 경찰, 소방이 미군과 함께 공동으로 조사해 원인 등을 규명해야 주민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소방과 경찰은 미군의 요청이 있다면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ase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