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매는 왜 설날 할머니를 살해했나

[사건의 재구성] 누나와 지적장애 남동생 공모해 살인 계획
손자 장래 걱정한 할머니 엄한 통제에 불만…1심서 징역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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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할머니 돌아가시면 용돈 10만원으로 올려줄게."

지난 2월 9일 설 연휴 첫날. 지적장애인 A씨(20대)는 7년만에 친할머니 B씨(70대)를 보러 부산에 왔다. 이날 오전 누나 C씨(20대)를 만나 샤인머스켓과 굴비 등 할머니께 드릴 설 명절 선물을 두 손 무겁게 들고온 손자를 할머니는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그날 밤,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A씨의 다급한 신고가 119로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119대원은 울먹이는 A씨를 뒤로하고 급히 B씨의 상태를 살폈지만 이미 숨은 멎어있었다.

A씨는 수사기관에 '할머니가 심한 어지럼증이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B씨의 몸에서 발견된 다수의 멍자국에 석연치 않음을 느낀 경찰은 A씨를 집중 추궁했고 그제서야 A씨는 범행을 실토했다.

A씨는 수년 만에 만난 할머니를 왜 살해했을까.

B씨는 생전 멀리 떨어져 지내는 손자 A씨를 끔찍이 생각하는 유일한 친족이자, 손자의 장래를 위한 억척스러운 잔소리꾼이었다.

기초생계비 등을 알뜰살뜰 모아 자택을 마련했던 자신과 같이 A씨도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하길 누구보다 바랐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B씨는 A씨가 일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내야 할 식대 14만원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다니라며 꾸짖고, 매주 용돈으로 단 5만원을 사용하게 했다. 또 A씨와 오랜기간 함께한 활동관리사가 유료 TV 프로그램 1000원을 결제했다는 이유로 활동관리사를 해고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강도 높은 관리와 통제의 뒷수습은 출가한 누나 C씨의 몫이었다. C씨는 직장을 옮긴 남동생 A씨가 식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대신 비용을 냈고, 남동생 주변인과 할머니 사이 발생하는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불만을 키워온 남매는 지난해 10월 "할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통화를 시작으로 점차 "곰팡이를 먹여 죽이자" "납가루에 중독시키자"는 등 구체적인 살해 방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C씨는 A씨에게 "할머니 돌아가시면 용돈을 2배로 올려주겠다"며 꾸준히 부추겼고, 범행 일주일 전부터는 낙상사나 사고사로 위장할 살해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결국 설 명절 오랜만에 만나 단란히 회포를 풀 줄 알았던 할머니와 손자는 말싸움 끝에 몸싸움을 벌였고, A씨는 누나가 가르쳐준 대로 B씨를 죽인 뒤 사고사처럼 위장했다.

존속살해 혐의로 남동생과 함께 법정에 선 C씨는 A씨가 범행을 저지를지 몰랐다며 공범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 남매에게 똑같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곰팡이급성사망' '지적2급 살인' '아플라톡신곰팡이' 등과 같은 키워드로 수차례 인터넷 검색을 하고, 남동생의 살해동기를 강화하는 등 단순히 현실성 없는 장난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A씨와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생전 A씨를 위해 은행,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 저축·관리하는 등 착실하게 돈을 모았고, 주식도 증여하는 등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도 않았다"며 "존속살해는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인 데다가 범행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에 불복한 남매는 9월 5일 항소장을 제출했고, 현재 부산고법 제2형사부에 배당돼 오는 10월 30일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ase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