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성장 환경 참작해달라" 21차례 반성문 냈지만…'감형 전략' 안 통해
1심서 무기징역 선고…'영혼 없는' 반성문 진정성 의문
'진지한 반성' 필요 …반성 감형 사례 계속해서 감소
- 노경민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 및 유기한 정유정(23)이 재판에서 감형을 받기 위해 반성문을 쏟아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정유정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정유정은 지난 7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총 21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재판 초반에는 반성문 여러 부분에 판사가 반성문을 읽을지에 대한 의문도 드러냈다. 재판부도 이에 "반성문을 제출하면 구체적으로 다 읽으니 쓸 수 있으면 어떤 형식으로든 써서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유정은 자신의 성장 과정과 정신과 약물을 복용 중인 내용의 반성문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결심공판에서도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지 못한 점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점, 조부모의 폭행 등을 집중 거론했다.
하지만 이날 부산지법 형사6부(김태업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많은 반성문을 냈지만 과연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반성문에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지만, 체포된 후 법정에 이르기까지 보인 모습은 마치 미리 대비해둔 것처럼 작위적"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정유정의 반성문을 받아들이지 않을 조짐은 이미 있었다.
지난달 10일 신생아를 살해한 뒤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친모에 대한 공판에서 김태업 판사는 "좋은 재판 결과를 받으려고 '반성합니다' 식으로 쓰면 다 안다"며 "정유정도 계속해서 (반성문을) 써내고 있지만 그게 반성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유정이 21차례나 반성문을 써냈지만 반성문 제출 횟수 자체가 양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그동안 흉악 범죄자들의 반성문은 매번 논란 거리였다.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오로지 '감형 전략'의 일환으로 '영혼 없는' 반성문을 쓰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진정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지 피해자를 생각하는지는 반성문만으로는 알 수 없어 국민 여론을 들끓게 하기도 했다. 반성문을 대필해주는 업체도 등장하면서 반성을 감경 사유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왔다.
이같이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하는 '진지한 반성'이 감형 사유로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면서 대법원은 지난해 '진지한 반성'에 대한 정의 규정을 명확히 했다.
현재 진지한 반성은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감경 사유로 적용된다.
진지한 반성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인정받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반성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성문을 통해 감형받는 사례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1심 기준) 성범죄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감형을 받았으나 2020년에는 31.6%, 2021년에는 27.3%로 급격히 감소했다.
성범죄뿐만 아니라 살인 등 각종 범죄를 기준으로 봐도 감형받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게 양형위원회의 설명이다.
보통 형량 감경을 위해 쓰이는 반성문이 때로는 가중 사유로 참작돼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해도 진정으로 죄책감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하려는 경우에는 형량이 늘어날 수 있다.
일면식 없는 여성을 뒤따라가 폭행으로 의식을 잃게한 뒤 성범죄를 저지른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도 항소심에서 반성문을 4차례 냈지만, 가중 양형 인자로 '반성 없음'이 적용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들어 잔혹 범죄에 대해선 '엄벌주의' 기조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중형 선고의 배경으로 꼽힌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실제로 형사 사건에서 반성이 유리한 양형 인자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진지한 반성'은 재판부에서 피고인이 정말로 반성하는지를 충실히 심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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