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버스에 오른 휠체어장애인…기사도, 승객도 "처음 봐"

뇌병변장애인 성희철씨, 전동휠체어 저상버스 탑승기
저상버스 도입율 34.7%…올해 도입 예정 대수 절반도 못 채워

뇌병변장애인 성희철씨가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2023.10.27/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지난 25일 오후 1시 부산시 사상구 주례역 인근 한 시내버스 정류장. 뇌병변장애인 성희철씨(48)가 벌써 몇 대 버스를 그냥 보낸 채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희철씨가 탄 전동휠체어는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버스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번호의 버스를 보낸지 10여분 뒤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희철씨는 버스가 BRT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크게 손을 흔들었지만 다른 승객들이 희철씨의 탑승의사를 전달하기 전까지 뒷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휠체어용 수동 발판을 펼치던 기사는 뒤따라 밀려드는 버스에 휠체어 고정장치를 채우지 않은 채 운전석으로 급히 돌아갔다.

고정되지 않은 휠체어는 과속방지턱, 우회전·좌회전 커브길 등 지형이 변할 때마다 밀리기도 하고 기울어지기도 하며 크게 흔들렸다.

이날 희철씨와 동행한 장애인활동지원사는 "휠체어 장애인은 혼자 탈 수 없다며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휠체어가 낮아 운전석 시야에서 안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류장에 진입하면서 보고도 일부러 태우지 않고 출발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28일 부산시에 따르면 시내버스 2517대 중 저상버스는 875대로, 도입율은 34.7%이다. 단순히 시내버스 3대 중 1대가 저상버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선별 도입율은 4%~100%까지 천차만별이다.

특히 시내버스 노선 중 저상버스 도입 예외 노선은 14.4%(146개 중 21개)로, 휠체어장애인에게는 버스를 타고 갈 기회조차 없는 곳도 여전히 남아있다.

전동휠체어가 고정되지 않은 채 버스가 운행되자 한 승객이 휠체어를 붙잡고 있다.2023.10.27/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하차도 승차만큼 쉽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이 협소한 탓에 연석과 멀리 떨어져 정차한 버스는 보도블록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앞뒤로 위치를 조정했다.

그동안 뒤따라온 3~4대 버스가 정류장에 다다르자 버스끼리 부딪힐 뻔한 위험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환승한 버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버스 기사는 고정 장치를 요청한 희철씨에게 뒷 버스가 밀려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희철씨의 전동휠체어에 고정 장치가 채워진 건 그로부터 800여m를 더 간 후였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임시 정차한 버스가 재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이었지만 일부 승객은 '두리발이나 타지 왜 버스를 타냐' '시간에 딱 맞춰 버스를 탔는데 약속에 늦겠네' 등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 고정 장치를 채우지 않아 흔들리던 휠체어를 선뜻 잡아준 승객도 있었다.

대학생 황승현씨(19)는 "너무 위험해 보여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며 "고정 장치도 없이 출발하거나 고정 장치를 완벽하게 채우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전장치는 물론 안전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수적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뇌병변장애인 성희철 씨와 보행보조기를 사용하는 노인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2023.10.27/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이날 희철씨를 태운 3명의 버스 기사는 4년차부터 31년차까지 경력이 다양했지만 모두 휠체어를 탄 승객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희철씨는 "장애인이 버스를 타지 않아 세금이 아깝다, 관리 비용이 더 든다 등 저상버스 도입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관점을 바꿔야 한다"면서 "단순히 저상버스 도입율을 높일 게 아니라 왜 버스를 타지 않는지, 왜 버스 타는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은 부산뇌병변복지관 관장은 "저상버스는 노약자, 장애인, 유모차 등이 편하게 이용하기 위한 버스로, 장애인이 굳이 버스를 왜 타냐는 식의 비장애인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며 "장애인의 접근성을 위해 지하철마다 설치한 엘리베이터가 임신부, 노인 등의 편의를 확대했듯이 저상버스 역시 누군가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올해 도입 예정이었던 저상버스 319대 중 10월 현재 기준 129대(41.2%)만을 확보했다. 목표치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부산시 관계자는 "올해 초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로 법이 개정되면서 수요가 급증하다보니 예정된 일정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고 있다"며 "올해 도입하지 못한 저상버스는 내년 도입 예정 대수와 합쳐 투입될 것이며 2026년까지 62.7%를 목표로 꾸준히 도입율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ase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