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환생' 꿈꾸며 같이 죽을 생각"…우울증 심리검사 거부(종합)

"제 이야기 들어줄 사람 필요"…피해자에 책임 돌리기도
가정 폭력에 대해선 할아버지와 상반된 입장 주장도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지난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정유정의 신상공개 사진. 2023.6.2/윤일지 기자 ⓒ News1

(부산=뉴스1) 노경민 조아서 기자 =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끝에 같이 세상을 떠날 여성을 찾아 '환생'을 꿈꿨다고 주장했다. 조부모와의 갈등 원인으로 꼽힌 가정 폭력에 대해선 할아버지와 상반된 입장을 펴기도 했다.

부산지법 형사6부(김태업 부장판사)는 16일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절도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에 대한 두번째 공판기일을 열었다.

정유정은 '왜 살해했나'는 검찰의 질문에 "같이 죽을 생각인 것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며 "힘든데 방법이 없어 속상한 일이 있어도 바로 풀지 않아 쌓여왔던 것 같다"고 답했다.

또 '피고인에게 성장 환경 등 사정이 있었던 것 같지만, 피해자는 무관하지 않느냐. 왜 살해했나'는 재판부의 질문에 "같이 죽으면 환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같이 죽어서 (제대로 된)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해자의 손에 정유정의 DNA가 검출되지 않은 만큼, 피해자의 저항은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정유정은 "피해자가 내 목을 졸랐고 안경도 떨어졌다"며 상반된 진술을 폈다. 검찰이 흉기를 휘두른 횟수에 대해 지적하자 "(그정도로) 찌른 줄은 전혀 몰랐다.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정유정은 살해 전 가방에 흉기를 집어넣는 등 사체 유기에 대한 계획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정유정 할아버지 A씨도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정유정의 어릴 적 가정환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정유정은 중학교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각종 상을 받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졌고 여러 가지의 이유로 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조사에선 정유정이 취업 실패에 조부모와 갈등까지 빚으면서 분노를 키워 범행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재판에선 정유정이 과거 경기도 한 대학에 합격했으나 A씨가 "가정 형편상 등록금을 주기 어렵다"는 말에 진학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선 폭행, 학대 등을 두고 정유정과 A씨 간 이견이 있었다.

A씨는 "말을 안 들을 땐 훈육 차원에서 몇 번 때린 적은 있다"며 "중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선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유정은 "할아버지가 청소기로 때린 적도 있고 옷걸이로 머리를 때려 이마에 상처가 난 적이 있다"며 "초등학교 때 새할머니가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방으로 데려갔다. 훈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중고로 구입한 교복 차림으로 부산 금정구 소재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잠시 대화를 나누다 흉기로 살해했다. 2023.6.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잇따른 취업 실패에 고립 생활을 이어가던 정유정은 지난해 7월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걸로 추정된다. 이때 A씨도 관할 구청에 무료 심리검사를 의뢰해 구청 직원이 2차례 정유정의 집에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구청 직원이 정유정에게 굉장히 심한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심리 검사를 요청했으나 정유정은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정유정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및 보호관찰명령을 청구했다. 검찰 구형과 피고인 최후변론은 다음달 6일 부산지법 354호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정유정은 지난 5월26일 부산 금정구에 사는 피해자 B씨의 집을 방문해 살해 및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정유정은 범행 대상을 찾기 위해 과외앱을 통해 54명에게 대화를 시도했고, 이중 B씨에게 중학교 3학년 딸의 영어 강사를 구한다고 속여 접근했다.

재판 초반에는 '계획적 살인'을 부인했으나, 지난달 18일 첫 공판에서는 계획적 범행이 맞다고 주장을 번복했다.

이외에도 정유정은 앱을 통해 살해를 시도하려다 미수에 그친 2건에 대한 추가 혐의(살인예비 혐의)에 대해서도 송치된 상태다.

정유정은 B씨 범행 이전 중고거래 앱을 통해 알게 된 20대 여성 C씨를 산책로로 유인해 살해하려다 주변 행인들로 인해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또 앱 채팅으로 10대 남성 피해자를 유인하려 했으나 정유정의 부자연스러운 채팅에 의심이 들어 범행 장소로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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