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 패싸움에 '90도 깍두기 인사'…수십년째 세력 다툼 부산 조폭들
영화 '친구'로 알려진 칠성파·신20세기파 건재…조직원 총 300여명 추정
- 노경민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지난 2021년 10월17일 오전 4시2분쯤 부산 부산진구 번화가 서면에 한 조직폭력배 조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갔다.
이들이 건물 출입문을 통과한 뒤 뛰어간 곳에는 부산 양대 조폭인 '칠성파'와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곧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주먹을 날리는 등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패싸움 여파로 한 조직원은 야외 주차장 한복판에 기절한 채 뻗어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옆에 있던 후배 조직원들은 선배 조직원들에게 깍듯하게 조폭 특유의 '깍두기 인사'를 했다.
2년 뒤 이곳에서 패싸움을 벌인 조폭 13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범죄단체활동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의 양대 조폭이 조직의 위세를 과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두 조직은 어느덧 40년이 넘도록 세력 다툼을 이어가고 있고 지금도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네가 가라 하와이" 한마디에 유명세 떨친 두 조직
칠성파는 1970년대 부산에서 유흥업소 등을 주요 수입 기반으로 성장한 부산지역 최대 조폭이다. 신20세기파는 1980년대 남포동 일대를 근거지로 오락실을 기반으로 세력을 점차 넓혀가면서 자연스럽게 '반(反)칠성파' 구도를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위주로 인지도를 형성했던 두 조직은 2001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친구'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역 주도권을 휘어잡기 위해 두 조직의 주먹이 오가면서 시민들에게 위화감과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서면 패싸움 사례 외에도 한쪽 조직에서 상대 조직에 선제 공격을 하면, 늘 보복이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검찰이 파악한 칠성파, 신20세기파 조직원수는 각각 200여명, 100여명이다. 경찰과 달리 검찰이 관리하는 조폭은 범죄단체활동 등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어야 하므로 기준이 까다로운 편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소위 '동네 건달' 행세를 한다고 조폭에 끼워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에서도 칠성파와 신20세기파는 부산에서 유서 깊은 조폭으로 보고 있다.
◇결혼식·장례식서도 건재 과시…경찰도 긴장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씨는 죽어서도 경찰을 긴장하게 했다. 이씨는 지난 7월19일 지병으로 향년 80세로 사망했다.
이씨는 수사기관의 관리 대상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려왔다. 1980년대 전국구 조폭 두목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영화 '친구'의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이씨의 빈소에는 수많은 화환과 검은 정장 차림의 거구 남성들이 자리를 지켰다. 돌발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장례식장에 경찰력을 투입해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2006년 신20세기파 조폭 60명이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침입해 칠성파와 흉기 난투극을 벌인 바 있고, 2021년에도 장례식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보복이 일어날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6월말에는 신20세기파 두목의 결혼식이 부산의 한 호텔에서 열리면서 200명이 넘는 하객들이 붐볐다. 전국 각지의 조폭들로 추정되며 결혼식이 열리기 몇시간 전부터 거구의 조직원들이 출입문 앞을 지켰다.
호텔 내부에선 쩌렁쩌렁한 "형님" 인사가 들리기도 했다. 기업 대표, 정치인 등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화환도 줄을 이었다.
이때 역시 경찰은 위화감 조성 등에 대비하기 위해 30여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다행히 결혼식은 유명 가수의 축가 속에 조용히 마쳤다.
◇마약 범죄 '최다'…조직 간 흉기 휘두르기도
조폭과 떼놓을 수 없는 게 '마약'이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폭력조직 마약류범죄 지역별 현황(밀수·밀매·투약 등)에서 부산이 전체 25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을 기록했다.
칠성파·20세기파뿐만 아니라 영도파, 하단파 등 다양한 조직이 이름을 올렸다.
조직 간 보복 범행은 마약에서도 일어난다. 2000년 10월 신20세기파 조직원이 필로폰 거래 문제로 같은 지역 '온천동파' 두목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2000년대까지 조폭들 사이에서 마약류 범죄 개입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2010년대 이후 금기 관행을 깨고 영리 목적의 마약류 밀수 사건이 계속해서 적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조폭 15%는 부산에…수사력 집중
과거에 비해선 조직 내부의 세력 결집화가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부산은 여전히 양대 조직이 활개를 치는 곳이기도 하다. 검찰이 전국적으로 관리하는 조폭 가운데 부산에만 약 15% 정도 몰려 있다.
혹시 모를 범행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다쳐도 병원 치료도 받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검찰도 서면 난투극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두 조직 접견 녹취록을 확보하는 등 직접 수사를 실시하고 범죄단체활동죄까지 적용해 기소했다.
서면 난투극 사건과 관련해 칠성파 조직원 5명과 신20세기파 조직원 8명이 최근 재판에 넘겨졌고, 이중 칠성파 조직원 1명은 현재까지 도주한 상태다.
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는 지난해 12월 검찰 직제 개편으로 반부패수사부와 분리되면서 마약·조폭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범행에 가담한 조직원은 물론 배후 조직까지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의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부산은 아직 주먹이 오가는 소위 전통적인 조폭 스타일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며 "조폭들의 세력 다툼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blackstamp@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