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페트병 넣었더니 장갑이?…어르신 수거 폐플라스틱의 '변신'

부산 동구 우리동네ESG센터 개소…전국 첫 플라스틱 수거·제조·판매 센터
노인 용품으로 재탄생…어르신 노하우 살려 친환경에 '한발짝'

폐플라스틱 실뭉치가 작업용 장갑으로 재탄생한 모습. 장갑 뒤로 기기가 작동되고 있다.2023.9.25/뉴스1 ⓒ News1 노경민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착, 착, 착'

지난달 25일 부산 동구 우리동네ESG센터에서 실뭉치를 자동화 기기에 넣었더니 5분만에 장갑이 눈앞에 등장했다.

평범한 실뭉치가 아니다. 동네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여러 공정을 거쳐 분해한 뒤 실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갑은 노인들의 작업용 장갑으로 쓰이게 된다. 센터 작업실 한편에도 무수히 많은 장갑들이 쌓여 있었다.

'거북이공장'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지난 15일 부산 동구 일자리복합센터에 터를 잡았다.

전국 최초로 지역 어르신들이 폐플라스틱을 수거, 분해, 가공, 재작업을 한 뒤 노인용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일하는 직원은 모두 지역 출신 노인들이다.

폐플라스틱 분해 과정이 왼쪽 상단에서부터 1~4단계 과정으로 전시되고 있다. 2023.9.25/ ⓒ News1 노경민 기자

작업 과정은 이렇다. 다 쓴 플라스틱을 센터에 수거해 오면 분쇄기를 통해 울퉁불퉁한 플레이크로 분해한 후 플레이크를 녹여 펠릿으로 더욱 잘게 다듬은 뒤 마지막 과정을 거쳐 솜으로 분해한다.

이 솜뭉치가 실로 사용되면서 자원봉사자 조끼, 장갑, 수건, 안전 손잡이 등으로 재탄생한다.

폐플라스틱은 주로 페트병을 말한다. 페트병이 오염돼 있거나 라벨이 붙어 있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해 깔끔한 상태에서만 재공정이 이뤄진다.

분해된 플라스틱 조각에 안료(착색 분말)를 넣으면 다양한 색으로도 제작할 수 있다. 페트병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장난감도 재활용하고 있다.

거북이공장에서 일하는 어르신은 총 15명. 자수 작업, 큐레이터 등 지역에서 전문 경험을 보유한 어르신들이다.

부산 동구 우리동네ESG센터 직원이 페트병을 리사이클링 기기에 넣고 있다. /2023.9.25 ⓒ News1 노경민 기자

취재진이 센터를 찾은 날에도 어르신들은 한데 모여 재생 플라스틱 구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동구 좌천동에 사는 김은희씨(67)는 "중장년층 일자리 소개를 받고 구청을 통해 센터에서 일하게 됐다"며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아 친환경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어 보람차다"고 웃었다.

무엇보다 노인 일자리 창출과 함께 환경 오염 주범인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어르신이 어르신을 돕는 선순환 구조인 데다 이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금정구에도 우리동네ESG센터가 설립됐지만, 동구 센터는 분해, 제조, 판매 등 전반적 작업을 맡아 개소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어르신들이 만든 재활용 물품은 이달부터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폐플라스틱을 모아온 아이들이나 학생들은 리사이클링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이채진 공장 대표는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르신들의 직무를 살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등 노인 일자리 창출 및 자원 재활용 사업을 실시해 뜻깊다"며 "물품은 노인 자원봉사자와 독거노인 가정 등에 배분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동구 우리동네ESG센터에서 근무하는 지역 어르신들이 재활용 플라스틱 분리 작업을 하고 있다. /2023.9.25 ⓒ News1 노경민 기자

blackstam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