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 힘들고, 시골도 부담되면…부산 영도로 오세요"[지방소멸은 없다]

영도 청년활동 단체 '심오한연구소' 엄창환·심보라 부부
서울 떠나 삶터 마련 '눈길'…"청년들 부산 정착 이끌것"

편집자주 ...영영 사라져 없어지는 것. '소멸'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토록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를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 현실과 고민을 함께 생각합니다.

심오한연구소의 심보라 대표와 엄창환 대표.2023.4.20/뉴스1 노경민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대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다고 시골에 가기는 부담스러운 분들은 '중간 지대' 영도가 제격이죠."

인구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서 청년 커뮤니티 단체 '심오한연구소'를 운영하는 부부 엄창환 대표(39)와 심보라 대표(36)는 청년들에게 영도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소개하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심오한연구소는 심 대표와 엄 대표의 별명 '심바'와 '오동'의 앞글자를 따 만들어졌다. 연고지도 서로 다른 이 부부는 청년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심 대표는 서울 출신으로 공정여행 분야 등에서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업이었다. 엄 대표는 부산 북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후 청년 활동을 위해 전국을 돌며 활동했다. 이때 우연히 만나게 돼 서로 같은 공감대를 확인하고 결혼하게 됐다.

8년 전 이들은 서울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청년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방에 새 터전을 찾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 봤지만, 영도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영도를 꼽은 이유는 '쾌적한 삶터'였다. 취재진도 영도 봉래산 능선에 따라 산복도로에 위치한 연구소 옥상을 올라가 보니 영도 전경이 확 트여 있었다. 여기에 조용한 동네 분위기에 저렴한 집값까지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이야기가 나올만 했다.

엄 대표는 "시골에 내려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번화가에 살기는 너무 압박감이 든다는 청년들이 많았다"며 "심오한집 회원들과 영도를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곳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심 대표는 서울에 있는 가족과 지인을 남겨둔 채 낯선 영도 사회에 스며들기는 무척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서 이웃 간 벽도 허물어지니 '드디어 내가 영도에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계의 중요성도 깨달았다"며 "부산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회상했다.

연구소는 '청년, 지역, 공간' 3가지 키워드로 운영되고 있다. 영도를 '일터'보다는 '삶터'로 바라보면서 이주를 꿈꾸는 2030세대 청년층 유입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성과도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서울 출신 A씨는 '한달 살기 프로젝트'로 연구소를 찾게 됐고 영도에서 2년 반 정도 살았다. 목공 관련 일을 하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부산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양산에 갔다가 관련 직종에 취업해 다대포에 정착하게 됐다.

엄 대표는 "단순 체류 숙박이 아닌 청년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지역의 실질적인 문제와 지역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 영도구 심오한연구소에서 '심오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금은 한달 살기 프로젝트가 잠시 중단됐지만, 영도에 관심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단기 체류를 도와주고 있다. 조만간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시행될 '넥스트 그라운드'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다시 한달 살기 프로젝트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넥스트 그라운드는 시끌벅적한 도시처럼 너무 치열하지 않고 적정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지역 청년들과 인터뷰, 포럼 등을 통해 고민해보는 프로젝트다.

엄 대표는 "영도에 살고 있는 청년뿐만 아니라 영도에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과 지역에 큰 일자리가 없더라도 땅과 주택, 골목의 연결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이 모여있는 거점 마을을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지난해 영도구 인구정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청년관계센터' 아이디어를 내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아이디어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투자 대상이 된다. 부부는 앞으로도 영도 청년 인구 유입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 대표는 "많은 사람이 일자리 때문에 지방에서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사회적 관계망' 때문에 지방을 떠나고 싶지 않은 분들도 상당히 많다"며 "적절한 곳(영도)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델을 계속해서 연구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 문제는 그리 금방 쉽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영도는 좋은 환경과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앞으로도 청년들이 영도를 떠나지 않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산업연구원의 'K지방소멸지수'에 따르면 부산의 소멸위기 지역은 영도구, 서구 등 2곳이다. 영도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인구 증가율이 -2.79%로 나타나 소멸위기 지역(수도권 및 광역시 구·군)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도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지방소멸대응기금 126억원을 지원받았다.

blackstam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