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주목 받는 '이머시브 공연'…우려 목소리도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공연 중 관객이 참여한 모습(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공연 중 관객이 참여한 모습(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대학로극장 쿼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버닝필드'가 펼쳐졌다. 스태프가 극장 입구에서 검은색 무전기를 나눠 줬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었다. 막이 오르자, 배우들은 관객들 사이로 등장했다 사라지고, 화재 진화 장면에선 관객 손을 잡고 구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전기는 대사를 전달하는 도구이자, 관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안내자' 역할을 했다.

요즘 '이머시브'(immersive) 형 공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연극 '버닝필드'를 비롯해, '미친 예술 공연'을 표방하는 '푸에르자부르타 아벤', 최근 막 내린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등이 바로 이머시브 공연이다. '이머시브'란 영어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관객 몰입형 공연을 뜻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단순 관람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공연 안으로 끌어들이는 형식을 지닌다.

이머시브 공연의 핵심은 '관객 체험'이다. '푸에르자부르타 아벤'은 배우들이 와이어를 타고 하늘을 날다 객석으로 하강해 하이 파이브를 하고, 관객과 신나는 춤판을 벌인다. '데카당스'도 관객을 댄스 파트너로 이끌어 '맘보' 리듬에 맞춰 춤출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오는 8월 한국을 찾는 영국 이머시브 연극의 대표작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이 어떤 배우와 공간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진다고 하니, 경험 지평을 한 뼘 더 확장할 전망이다.

'푸에르자부르타 아벤' 공연 장면(크레센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푸에르자부르타 아벤' 공연 장면(크레센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머시브 공연의 장점은 뚜렷하다. 관객에게 높은 몰입감을 줄 뿐 아니라, 배우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공연의 출연자가 된 듯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늬만 '이머시브'인 무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몇몇 공연은 배우와 관객 간 상호 작용은 없이, 무대만 관객 석 쪽으로 확장한 채 '몰입형 공연'이라고 홍보한다. 또한 촉각·후각 등 여러 감각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머시브라고 알리는 경우도 있다.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공연들이 미미한 특징을 앞세워 '우리 작품은 이머시브'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례가 잦아지면, 최근 들어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수정 공연 평론가의 제언처럼, 효과적인 이머시브 공연이 되려면 "공연 내용과 이머시브 형식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야 하고, 관객의 동선이 세심하게 설계돼야 하며, 관객 안전관리 대책 등도 꼼꼼하게 준비돼야 할 터"다.

이머시브 공연의 시대, 점점 높아지는 관객 눈높이를 맞추려면 창작자들은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