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의 '거대한 힘'…전광영, 6년 만에 고국서 개인전
올해의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까지 60년 화업 세계 조망
서울 종로 가나아트센터서 2월 16일까지…"오래 버텨 감사하다"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전광영 작가의 대표작은 '집합'이다. 논어나 맹자, 법전이나 소설 등 고서의 내용을 한지에 담은 후 꼬아 끈으로 묶고 이를 수천 개의 삼각형 스티로폼에 촘촘하게 매단 작품으로 위세가 당당하다.
'집합'은 작가가 탐구한 한국적인 정서, 그 이상의 것이다. 19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학하던 시절, 작가는 자신의 경쟁력을 한국 고유의 정신과 문화에서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어린 시절 큰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약방에서 본 풍경과 물건을 감싸는 '보자기'였다.
작가는 두 소재에서 공통적으로 한국의 '정'(情)을 느꼈다. 전광영은 "서양은 '박스' 문화이지만, 우리는 '보자기 문화'"라며 "시집간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싸주는 보자기, 계량이 어렵고 모양도 망가지지만 그게 바로 한국의 정이자 영혼"이라고 말했다.
약재 봉투는 작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이면서, 한지에 가지런히 적힌 글씨는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집합'의 삼각형 조각을 싸고 있는 한지에는 서로 다른 고서의 내용이 적혀 있지만 화면에서 우연히 만나고 얽힌다. 이런 작업 방식을 통해 작가는 각기 다른 지식, 역사, 사상 등을 기반한 이야기들이 시대나 지역을 초월해 인접하면서 조화를 이루거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충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집합'은 1995년 처음 등장한 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색채의 사용이다. 작가는 한지를 갖가지 색으로 물들이거나, 부적이나 신문지와 같은 재료를 사용해 화려한 색감이 강조된 화면을 구성했다.
이런 작업의 단초는 시리즈 '빛'에서 찾을 수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나고 자란 전광영은 어린 시절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색을 보며 영감을 받아 '빛'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렇게 평면 작업에서 일찍이 시작된 그의 구조적이고 구축적인 조형 방식은 '집합' 시리즈의 토대가 되었고 부조와 같은 회화를 탄생시켰다.
다채로운 색채 사용이 다시금 나타나는 근작은 전광영이 화업 초창기부터 보여 온 색채에 대한 애정과 평면에 공간감을 부여하고자 지속한 매체 탐구의 결과가 종합된 것이다.
전시에서는 작품 'Aggregation19-MA023'이 영상 작업 'Eternity of Existence'와 함께 배치된 것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로 폭 11m, 세로 폭 4m의 벽을 가득 메운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의 낙수는 마치 관람자를 집어삼킬 듯 시각적으로 경이롭고 강렬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두려움과 의아함을 증폭시킨다. 작가는 두 작업을 마주 보게 놓아 수만 년의 시간을 품은 자연과 인간이 대면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런 전광영의 작품들을 오는 2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6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으로, '올해의 작가 2001-전광영'과 200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인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에 출품됐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전광영 작가는 "60여년 작품 생활하면서 이렇게 많은 기자가 관심을 가져준 것이 처음"이라며 "오랫동안 버틴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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