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에 펼쳐진 파스텔의 마법…니콜라스 파티 '더스트'展
'미술사 걸작' 파티만의 시선으로 파스텔화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직접 그린 대형 벽화 5점, 전시 후 '먼지처럼' 사라져…25년 1월19일까지
- 김일창 기자
(용인=뉴스1) 김일창 기자 = 가히 파스텔의 마법이다. 10대 시절 몰래 그라피티를 남기고 사라졌던 한 청년은, 훗날 '스프레이' 대신 '파스텔'을 들었다. 미술 역사의 수 많은 걸작들은 그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미술사의 걸작들과 파스텔의 마법같은 만남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호암미술관은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44)의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최대 규모의 서베이 전시 '더스트'(DUST)를 31일부터 2025년 1월 19일까지 개최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호암미술관이 처음으로 동시대 작가를 선보이는 자리이다.
스위스 로잔 인근에서 태어난 파티는 10대 시절 10여년 동안 그라피티를 그렸다. 건물 벽에, TGV 등에 순식간에 그라피티를 하고 사라지던 청년이었다. 대학에서는 영화와 그래픽 디자인, 3D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해 음악과 퍼포먼스가 융합된 전시와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그의 예술 세계를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티의 기존 회화 및 조각 48점과 신작 회화 20점, 그리고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파스텔 벽화 5점을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 일부와 함께 선보인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보이는 높이 약 5.5m의 대형 작품은 붉은색 돌 사이로 힘차게 물이 쏟아지는 '폭포'이다. 흡사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를 보는 듯하다. 파티는 19세기 사실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의 폭포 그림들을 참조했으나, 현실을 미화나 왜곡 없이 그리고자 했던 사실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쿠르베에게서 영감을 받듯 파티는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미술사의 다양한 작가, 모티브, 양식, 재료 등을 자유롭게 참조하고 샘플링해 그만의 독자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킨다.
그 이미지를 구현하는 재료는 '파스텔'이다. 파스텔은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후 잊힌 재료이다. 하지만 파티는 이 파스텔을 사용해 가벼움과 심오함, 유머와 진지함 사이를 넘나든다. 파티는 파스텔화를 '먼지로 이뤄진 가면'(mask of dust)에 빗대며, 마치 화장과 같이 파우더로 덮인 환영을 만든다.
파티는 전시에서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과 재현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엮어내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한다. 생명 탄생과 예술의 기원을 담은 거대한 '동굴' 작품 앞에 조선시대 '백자 태호'를 병치하고, 지구상에서 멸종된 종을 손바닥만 한 동판에 온순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담아낸 '공룡' 연작은 '청동운룡문 운판'에 재현된 상상의 동물이자 불법을 수호하는 용(龍)의 이미지와 만난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브론치노의 해부학적 인체표현과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케셀 1세의 곤충 이미지를 참조한 작품 '주름'과 '곤충' 연작은 '목숨 수(壽)'자를 굴곡진 늙은 송백(松柏)의 형상으로 구현한 정선의 '노백도'와 함께 놓여 있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일찌감치 머물며 △폭포 △동굴 △나무 기둥 △산 △구름이란 거대한 벽화 다섯 점을 직접 그렸다. 이 작품들은 전시가 끝나면 '공기 속 먼지'처럼 폐기된다. 이를 통해 파스텔의 존재론적 불안전성을 인간과 비인간 종(種), 문명과 자연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확장한다.
전시 기획자인 곽준영 미술관 전시기획실장은 "니콜라스 파티는 파스텔화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확장하고 미술사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롭게 참조하고 샘플링하는 작가"라며 "미로와 같은 공간에서 아치문을 통과할 때마다 만나는 낯선 무대에서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교차하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료 관람.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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