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1세대 조경가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다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 설계 등 韓 조경의 역사 정영선 선생 개인전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열심히 했다"…국립현대 서울관서 9월 22일까지

정영선 한국 1세대 조경가가 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언론공개회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전시는 5일 식목일부터 9월 22일까지 열린다. 60여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조경가의 아카이브 대부분이 최초로 공개되면 파스텔, 연필, 수채화 그림, 청사진, 설계도면, 모형, 사진, 영상 등 각종 기록자료 500여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2024.4.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경춘선숲길 철교 전경, 2018. 작가 소장.

"당신이 아는 모든 조경에 조경가 정영선 선생이 있다."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을 비롯해, 여의도샛강생태공원, 광화문광장,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경춘선 숲길, 서울식물원, 선유도 공원, 남해 사우스케이프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친 곳들이니 '당신이 아는 모든 조경에 조경가 정영선씨가 있다'는 말은 가히 틀린 말이 아니다.

올해 여든셋, 서울대 농과대학에 진학해 학교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될 만큼 문학소녀였던 정영선 선생은 1980년 우리나라 여성 중에서는 처음으로 '국토개발기술사'(조경) 자격증을 취득하며 본격적으로 조경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그의 작업 여정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들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조경전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오는 9월 22일까지 서울관에서 이어진다.

그의 조경은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으로 대변된다. 대자연에 집 한 칸 짓고 그 자연을 조경으로 삼은 한국의 조경과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계획을 통해 조성되는 서양의 조경을 정영선은 장점만 쏙 뽑아 작품에 '식재'한다.

그래서 그의 조경은 우리 고유의 지형과 땅의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 수직에서 수평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나아간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 습지를 복원하고 하천 환경을 개선해 도심 속 물의 중요성을 환기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공의 최적의 조화가 정영선 선생의 조경인 셈이다.

전시명은 선생이 좋아하는 신경림의 시에서 착안했다.

그에게 조경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다. 삼천리금수강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처럼, 선생은 50여 년의 조경인생 동안 우리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유 자생종의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시는 선생이 설계한 조경 프로젝트를 사진과 스케치 자료, 영상, 설계도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야외 종친부마당과 미술관 내 중정인 전시마당에서는 선생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조성한 정원을 볼 수 있다. 선생이 했던 프로젝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규모이지만, 그의 숨결을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정 선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열심히 했다"며 "조경으로 전시를 한다는 것도 저한테는 황홀하고 기적이다. 조경은 늘 건축의 뒷전으로 여겨졌는데, 내가 전시를 해야 우리 후배들의 길을 열어준다는 생각으로 이번 전시에 임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료 관람.

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영선 한국 1세대 조경가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언론공개회에서 취재진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4.4.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정영선 한국 1세대 조경가가 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언론공개회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2024.4.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제주 오설록 '이니스프리' 전경, 2013. 사진 김용관.

ic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