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생명력과 분수의 무한 순환…유근택 개인전 '반영'
갤러리현대서 25일부터 12월3일까지…재즈 앨범도 발매 예정
수백수천 번 철솔질, 표면 해체하고 숨겨진 공간 드러내는 미학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땅에서의 생명력과 분수에서의 윤회사상 등을 회화로 풀어내는 유근택 작가의 개인전 '반영'이 갤러리현대에서 25일부터 12월3일까지 개최된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유근택은 동양 미학에서 강조되는 관념적인 시공간과 대조되는 '일상성'에 일찍이 주목하며 한국 화단의 신선한 움직임을 이끌었다.
그에게 일상이란 이 세계를 마주한 '나'를 새롭게 각인시키고 잊힌 감각을 여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일상성'에 관한 작가의 접근과 태도는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론으로 확장한다.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한지라는 동양화의 숙명적 재료가 지닌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실험을 지속했다.
그에게 한지는 대상을 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그림의 만나는 무대이자 스스로 회화적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와 같다.
유근택은 두꺼운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해 그 위에 드로잉과 채색한 후, 전면을 물에 흠뻑 적셔 철솔로 한지의 표면을 거칠게 올리며 다시 채색한다. 이 과정에서 신체적인 흔적과 숨결,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다.
철솔로 수백 번, 수천 번 문지르는 행위는 노동 집약적인 과정이자 작가가 작품의 표면과 물성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표면을 해체하고 아래 숨겨진 공간을 끌어올려 새로운 공간을 생성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이런 작업 과정의 결과물은 흡사 유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프리즈에서 작가의 작품을 본 외국인들은 흡사 유화 작품을 보는 듯하다는 감상평을 남겼다"고 말했다.
1층 전시장에 설치된 '창문', '거울', '이사' 연작은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반복하고 변주해 그림으로써 풍경의 미묘한 변화와 움직임을 드러내는 유근택 작품 세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에게 창문은 동양 미학의 이상향적 세계관을 인간의 체험적 위치로 옮겨놓는 문제의식을 구현하는 소재로, 창문 밖의 사계절을 그리며 내면의 색채 감각을 깨우고 사각 틀을 뷰파인더로 삼아 대상의 형태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조율해 간다.
2층 전시장에 소개되는 '봄-세상의 시작', '반영', '말하는 정원' 연작에서는 식물들이 대지에서 증식하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어느 봄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본 온 세계가 진동하는 듯한 대지의 난장을 '몸'으로 경험한 작가는 이를 우주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초현실적 장면으로 옮긴다.
호숫가의 사계절 풍광을 담은 '반영' 연작은 숲과 물가에 반사된 풍경이 화면을 이등분하는 구조로 완성됐다.
두 풍경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은 장대한 풍광을 유람하며 유유자적 거니는 전통적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일상과 역사라는 양립한 세계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 하며 사색에 빠진 존재론적 원형을 형상화한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분수' 연작 15점이 집중 조명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작품의 소재로 분수를 그려온 작가는 물의 파편이 풍경을 자르고 해체하는 모습을 통해 회화의 조형성을 사유했다.
팬데믹 기간 중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부친을 떠나보낸 유근택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실존적 이야기를 '분수' 연작에 담았다.
물방울이 물방울을 밀고 서 있는 분수는 한줄기의 물이 위로 쌓이다가 정점에 다다르면 다시 해체되어 물방울로 떨어지고, 다시 바닥으로부터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움직임이 끝없이 반복된다.
작가는 이런 순환운동이 생명의 윤회사상이나 존재론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하고, 해체되거나 소멸하더라도 올곧게 서 있는 분수의 수많은 물줄기를 추상적이면서도 구상적인 형태로 화면에 옮김으로써 탄생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성찰한다.
유근택은 1965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1988년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1997년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갤러리현대를 비롯해 대구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성곡미술관, OCI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한편, 갤러리현대는 이번 개인전을 음악적 언어로 풀어낸 재즈 기반 뮤지션이자 베이시스트 정수민의 앨범 '유근택: 반영'을 발매한다. 총 5곡의 재즈 음악으로 구성되는 앨범에 대해 유 작가는 "정수민씨와 처음 만났는데, 나는 미술을 그는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음악을 그가 미술을 이야기하는 등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앨범은 오는 11월1일 곡 '분수'가 처음 발표되고, 같은달 8일 전곡이 음원 사이트에서 공개된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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