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으로 삼겠다"며 버틴 윤범모 국현관장 사의…재임명 후 '수난사'

문재인정부 때 임명 후 지난 대선 직전 '재임명'…코드인사 이어 알박기 인사 논란
대표적인 민중미술 인사, 정권 교체 후 직간접 사퇴 압박…박보균 장관에 사의 표명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 16건의 위법·부당 업무처리가 확인된 가운데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23년 전시 및 중점사업 언론공개회에서 전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23.1.1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4년째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윤범모(72) 관장이 임기를 2년여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것은 정권의 직·간접적인 사퇴 압박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현대미술관 특정감사 결과가 사실상 직접적인 사퇴 촉구로 읽혔음에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던 윤 관장이 이후에도 계속되는 압박에 더는 버틸 여력이 없었다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3일 미술계 관계자에 따르면 윤 관장은 최근 박보균 문체부 장관을 독대해 사의를 표명했다. 문체부는 이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윤 관장을 둘러싸고 알박기니 코드인사니 그동안 숱한 논란이 있지 않았느냐"며 "사퇴할 사람이 사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미 늦은 시점"이라고 했다.

윤 관장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2월 임명됐다. 미술계에서는 당시 윤 관장의 임명을 두고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돌았다.

그는 미술관장 공모 과정에서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재평가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최종 후보 3명 중 유일하게 역량평가를 통과했던 이용우씨는 탈락했다. 이씨는 입장문을 내고 "공개 모집 제도가 비공정성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했다.

윤 관장이 재평가를 통해 관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에는 미술계의 대표적인 진보 진영 인사라는 점이 꼽혔다.

그는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 창립멤버로,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로 재직했을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오월' 전시를 막는 광주시와 갈등을 빚다가 사퇴하기도 했다. 가까이 지내는 이들 대부분도 민중 미술계 인사들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중앙박물관 등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2022.10.18/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윤 관장은 문재인 정부 말기이자 제20대 대선을 채 한달도 남기지 않았던 지난해 2월25일 재임명, 2025년 2월2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같은해 3월 정권이 교체되면서 그의 임기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실제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문재인정부의 '알박기' 인사를 비판하며 윤 관장이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문재인)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재임용됐다"며 "언론에서도 전형적인 '알박기'란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맡아 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인물로 대표적인 친윤계 의원이다. 같은당 이용호 의원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윤 관장이 재임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문체부는 여당의 강도 높은 압박과 직장 내 괴롭힘, 부당 인사 논란 등을 이유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했다. 문체부는 지난 1월9일 결과를 공개하면서 16건의 위법·부당 업무 처리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윤 관장이 기관장으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윤 관장은 다음날인 10일 기자들과 만나 "감사 지적을 당해서 안타깝다"면서도 "열심히 하라는 채찍과 격려로 알겠다"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ic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