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폭격' 양혜규 개인전…"이해말고 신비롭게 남겨둬"

양혜규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9월3일~11월17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 간담회에 참가한 양혜규 작가의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전시장의 모습은 한마디로 '비주얼 폭격'이었다. 벽에는 양파와 마늘, 무지개와 번개, 로봇 팔, 짚풀 등이 강렬한 색깔의 이미지로 표현돼 벽지로 붙어있었다.

구슬들이 뭉쳐있는 '미러볼' 같은 구 형태의 작품이 공중에 매달려있었고, 은색과 회색으로 칠해진 짐볼들은 홀로그램 장기판으로 꾸며진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흰색 블라인드로 만들어진 입방체와 바닥에 깔린 연무, 들려오는 새소리 등은 전시장을 신비로운 공간으로 느끼게 했다.

정점은 전시장을 이렇게 꾸민 작가였다. 3일부터 이곳에서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을 여는 양혜규 작가(48·독일 슈테델슐레 교수)는 본인의 얼굴에 빨간색으로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전시장에 나타났다.

양 작가는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다. 그는 평소 일상적 어휘들을 반복·교차시키면서 인류 역사, 문화, 사회 모습들을 관찰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와 현재, 기술과 문화, 자연과 문명 등을 다루고 있다.

양혜규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 전경.ⓒ 뉴스1 이기림 기자

전시장에는 '보물선(1977년 추정)' '배양과 소진(2018)' '솔 르윗 동차(2018~)' '소리 나는 운동(2019)'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2018)' 등이 채워져있다.

분명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의미하는 것 같다. 강렬한 이미지에 몸속의 감각이 곤두선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도 "작품이 무슨 뜻이냐, 관람객은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냐"는 질문이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신비로운 건 신비롭게 남겨놔야 한다"며 "시간이 지나가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쌓여서 보일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작가는 시간과 공간에 집중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힌트를 줬다.

일례로 전시장에는 새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도보다리를 거닐 때 들린 소리이다. 작가는 "당시 독일에서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이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압도적인(overwhelming)' 느낌을 받았다"며 전시장에 이 소리를 채운 이유를 설명했다.

작가가 이렇게 시공간에 집중하게 된 건 젊은 시절 그가 제3세계로 느껴지는 독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1994년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로 이주해 교수로 재직 중인 슈테델슐레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에게 독일은 모든 게 새로운 공간이었다. 게다가 그의 정신 상태는 또래가 아니라 더 나이가 많은 전후세대 유럽인들과 닮아있었다. 작가는 새로운 공간과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함, 무지 등을 떠올리며 새로운 감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관객들이 이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전시장에 와서 강렬한 이미지를 느끼고, 다른 시대와 공간에 놓인 이미지가 한 곳에 뭉쳐지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전시를 보다가 힘들면 짐볼 위에 앉아 쉬면 된다. 그 자체로 성공한 관람이다.

양혜규 작가는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그의 작품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작품을) 일부러 어렵게 하는 것은 '노(No)'"라며 "예술, 미술, 창작이란 것들이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다고 보고 쉽게 풀어내는 건 아니란 신념으로 작업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lg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