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 "민중미술로 규정 말라"…풍경으로 소통하다

40여년 풍경 유화 그려…국제갤러리서 첫 개인전

민정기 작가가 29일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제 작품을 민중미술이라고 규정짓기보다는 폭넓게 봐줬으면 합니다. 미술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해 여러 경험과 관심사 이런 것들이 섞여 그림에 표현돼 있습니다."

민중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민정기 작가(70)는 29일 자신을 어떤 작가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합한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추상, 설치, 미디어 등 현대미술의 거대의 물결 속에서도 40여년 간 현실을 반영한 풍경 유화를 고수해 온 민정기의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했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예술 여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구작 21점과 신작 13점을 선보인다.

민정기는 1980년대초 스스로 '이발소 그림'이라 지칭하는 작품들로 국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국가가 지원하는 국전에 참여하는 대신 1980년부터 '현실과 발언' 동인 멤버로 활동하며 소위 고급예술이나 순수미술을 거부하고 전통과 모더니즘의 간극을 해소하는 작업을 해왔다.

즉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심미적 대상의 미술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처럼 소통을 위한 도구가 돼야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미술철학이다.

정선의 '청풍계'나 안견의 '몽유도원도' 같은 전통 동양화나 고지도를 차용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오늘날의 모습을 그린 그의 그림에는 '예전 것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그린다'는 그의 소통의 철학이 녹아있다.

민정기 '청풍계 1,2'ⓒ 뉴스1
민정기 '박태원의 천변풍경'ⓒ 뉴스1

민정기는 그동안 북한산, 금강산, 양평 벽계구곡, 묵안리 장수대 등 산세, 물세 같은 지형적 요소와 그 안에 스며든 인간의 흔적을 다룬 반면 이번에 발표하는 신작에서는 청계천, 사직단, 세검정, 백사실계곡 등 서울 시내에 산재한 건축물이나 터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민 작가는 화폭에 담을 장소를 수차례 답사해 사진을 찍고 사료들까지 찾아 그림에 반영하고 현실을 재해석한다.

신작 '청풍계 1,2'는 대한제국의 관료였던 친일파 윤덕영이 일제강점기에 인왕산 자락에 지은 600평 규모의 프랑스식 건물을 그림 속에 복원해 가파르게 들어선 다세대 주택들과 병치해 보여준다. 특히 거대한 저택 옆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청와대가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극대화시킨다. 윤덕영은 당시 민중들의 거센 반발에 저택에 입주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이 건물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소실돼 1970년대 철거됐다.

또 다른 신작 '박태원의 천변풍경 1~3'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을 바탕으로 청계천의 변모한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만리동 이발소의 창문 너머로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모습, 복개공사 모습, 최근의 모습을 상상력을 가미해 각각 그려넣었다.

민 작가는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한 배경그림 '북한산'을 그린 화가로 대중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김윤수 관장 시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 그림을 소장했는데 그런 역사적인 장소에 내 그림이 걸리는지 몰랐다. 한동안 축하와 격려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민정기 개인전 전시 전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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