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현대적 피임법' 쓰는 한국 여성 30%도 안 된다"

비계획임신 61% 인공임신중절로 이어져…"여성들 건강 우려"
의료진 "피하 이식형 피임제, 생소하겠지만 고려해 볼 방법"

30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산부인과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1.8.3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우리나라 여성들이 피임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현대적 피임법'은 잘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 의료진은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성에게는 월경-임신-출산-폐경 등 '재생산 건강'이 생애 전 주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첫 월경과 동시에 가임기 여성의 삶을 시작하는데 이때 잘못된 피임법을 사용하거나 피임하지 않아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 다수가 낙태로 불리는 인공임신중절로 이어진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22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15~2019년 이뤄진 임신의 약 48%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었고 이 중 61%가 인공임신중절 수술로 이어졌다. 인공임신중절은 자궁 및 골반질환을 비롯해 우울증 등의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유발한다.

다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2021년 국내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의 46.2%가 성관계를 할 때 어떤 피임도 하지 않았다. 설령 피임을 하더라도 10명 중 8명은 체외사정, 월경주기법같이 실패율이 높은 불완전한 피임법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이사라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문제는 불완전한 피임법을 사용하거나 어떤 피임도 하지 않아 일어나는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인공임신중절"이라고 강조했다.

이사라 교수는 "반드시 높은 성공률이 입증된 '현대적 피임법'을 통해 피임을 실천해야 한다"면서도 "체외사정과 월경주기법을 제외한 현대적 피임법만을 실천한 한국 여성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현대적 피임법은 실패율이 비교적 높은 체외사정과 월경주기법 이외 피임방법으로 △콘돔 △경구피임약 △사후피임약 △피하 이식제(임플란트) △자궁 내 장치(IUD) △난관·정관 수술 등이 해당한다.

체외사정과 월경주기법은 각각 최대 27%, 25%의 실패율을 보이며 불완전한 피임법에 속한다. 비교적 많이 쓰이는 남성용 콘돔이나 경구 피임약은 98~99%의 성공률로 불완전한 피임법보다 효과가 높다. 하지만 정확한 사용·복용법을 따르지 않으면 실패율이 최대 15%까지 높아진다.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갤러리 빈치에서 열린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콘돔 전시회’에 전시작품이 설치돼 있다. 2020.1.30/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따라서 최근에는 장기 가역적 피임법(LARC·Long Acting Reversible Contraceptive)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LARC는 체내에 이식하는 형태의 피임제로 이식제가 체내에 임신을 방지하는 호르몬을 계속 방출해 피임 효과를 낸다.

LARC는 콘돔이나 경구 피임약과 달리 사용 방법에 영향을 받지 않아 높은 성공률을 유지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LARC의 이식 후 1년 이내 피임 실패율은 0.05%에 불과하다. 성공률은 99% 이상이다.

LARC는 팔 위쪽에 넣는 '피하 이식형 피임제'와 자궁 내 삽입하는 '자궁 내 장치'로 나뉜다. 국내 허가된 LARC 제제는 피하 이식형 피임제 1종이다. 팔을 국소 마취한 뒤 길이 4㎝, 두께 2㎜의 작은 막대를 이식하는 방식이다.

몸에 어떤 물질이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시술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일반 주사를 맞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소 마취 후 시술이 진행되니 마취 주사 외에는 특별한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평균 1분 안에 이식되는데 임신이나 출산 경험 없는 여성도 사용 가능하다. 효과는 최대 3년 유지되는데 필요하면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 제거 후 1주일 안에 가임 능력이 회복될 수 있다. 자궁 내 장치는 효과가 3~5년으로 유지되며 피임 또는 월경과다증·월경곤란증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직 피하 이식형 피임제의 사용률은 낮은 편"이라면서도 "높은 효과와 만족도를 바탕으로 자궁 내 삽입이 필요 없이, 장기간 가역적으로 향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현대적 피임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또 "우리나라의 피임 실천율은 선진국 중에서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그로 인해 수반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올바른 피임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