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피가 안 멎는다는 혈우병, 완치도 멀지 않다
혈액응고인자 결핍에 따른 희귀 유전질환
국내 환자 2509명…꾸준한 관리·치료로 일상생활 가능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흔히 '피가 안 멎는 병'으로 알려진 혈우병은 국내 환자 수가 2500여명에 불과한 희귀질환이다. 그래도 꾸준한 관리와 치료로 일상생활은 물론 럭비 같은 과격한 운동도 할 수 있다. 신약과 최신 치료법 등이 계속 개발되고 있어, 완치를 기대해 봄 직하다.
그동안 진료 가능한 병원은 많지 않았는데 이 역시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책으로 개선의 여지가 생겼다. 대한혈액학회 회장인 유철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는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측은하게 바라볼 질환도, 기피할 질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인자 여성이 남아 낳는 경우 혈우병 확률 50%
혈우병은 출혈 시 지혈을 돕는 혈액응고인자의 결핍에 따른 유전성 출혈 질환이다. 결핍 인자에 따라 혈우병 A(제8 응고인자 결핍), 혈우병 B(제9 응고인자 결핍)로 나뉜다. 대체로 남성에게 생긴다.
성염색체인 X염색체에서 응고인자 8번, 9번이 만들어지는데 여성은 X염색체가 2개인지라 둘 중 1개가 정상이면 혈우병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여성을 '보인자'라고 하는데, 보인자 여성이 결혼해 남아를 낳으면 해당 남아는 혈우병을 앓을 확률이 50%다.
남성 혈우병 환자와 정상 여성이 결혼한 경우 남아는 정상, 여아는 보인자가 된다. 다만 가족 중 환자나 보인자가 없는데 나타나는 경우도 25% 있다. 한국혈우재단 통계상 2019년 기준 국내 혈우병 A는 1746명, 혈우병 B는 434명, 이외 결핍증 329명 등 국내 환자 수는 총 2509명이다.
같은 환자여도 응고인자 활성도에 따라 중증도가 다르다. 활성도가 1% 미만으로 거의 없는 상태는 중증, 활성도 1~5% 수준은 중등증, 5% 이상을 경증으로 구분한다. 중증의 경우 관절이나 근육에 자발적인 출혈이 계속되고 주 1~2회 또는 원인 불명확한 출혈이 계속될 수 있다.
혈우병은 혈액 검사로 진단한다. 중증은 대체로 1살 전후 멍이 들어 관절 출혈로 진단받고, 중등증은 유아기에서 나이가 조금 더 들며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생후 몇달 만에 뇌출혈로 알고, 반복적인 출혈로 뇌 손상의 문제를 겪은 뒤 아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2019년 기준 국내 환자의 약 88%는 중증·중등증이다. 관절 변이, 지체 장애 등의 합병증을 겪는다. 합병증으로는 혈액이 관절에 고여 뼈와 연골을 파괴하는 혈우병성 관절 병증이 있다. 이른 나이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도 하고 뇌출혈, 장 출혈 등 생명이 위독한 사례도 있다.
혈우병은 응고인자를 주 2~3회 유전자재조합 주사제로 치료한다. 투여하면 응고인자 활성도가 정상인 100%에 이르는데 이후 반감기라도 활성도가 1~5%인지라 경증으로서 생활할 수 있다. 아직 피하주사는 없어 혈관 속 정맥을 찾아 주사한다.
유 교수는 투여 주기가 개선돼 월 1회 맞는 주사나 먹는 약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했다. 유전자 자체를 교정하는 연구가 이뤄져 혈우병의 근본적 치료는 물론 향후 완치가 될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제때 치료만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들도 출혈에 대해 걱정하고 조심하지만, 응고인자를 맞고 몇 시간 내 활성도가 높아진 상태인지라 축구, 럭비 같은 운동을 해도 괜찮다. 활성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리란 커브를 알면 어떤 활동도 가늠할 수 있다. 충분히 인자를 보충하며 계획했던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치료제 사용도 쉽지 않고 질환 관리도 힘들어, 현재 나이가 많은 환자들은 거동도 어렵고 인공관절 수술 한 이들도 꽤 된다. 반면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은 치료제도 많고 예방요법도 잘 이뤄져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빅 5 중 혈우병 진료 병원은 세브란스뿐"
환자들이 더 나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치료에 건강보험을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 교수는 "응고인자 제제가 저렴한 편은 아니라 부담을 느낄 환자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소아 혈우병 환자의 모든 의료비가 무료"라고 소개했다.
또한 "혈우병을 진료하는 대형병원이 많지는 않다. 현재 서울에서 혈우병을 치료하는 종합병원은 2곳 있고, 5대 대학병원 중에서는 세브란스뿐"이라며 "지방에도 많지 않다. 진료를 포기하는 병원도 있고 치료할 병원이 극히 적은 경향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전국에 69명뿐이다. 복지부는 소아암, 혈우병 등 소아 혈액 종양질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2024년부터 권역별 거점병원을 통한 진료 체계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유 교수는 "혈우병은 선천성 질환이라 어렸을 때부터 관리해 성인까지 진료를 본다. 10년 전부터 5대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시작했다. 혈액 내과에는 성인 혈액 질환이 많은 편이니 관심을 쏟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보인자인 경우, 아이가 혈우병을 앓으니 항상 미안한 마음,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 상당히 안타깝다. 접근법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데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인 만큼 의료진과 충분히 상담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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