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메이지 유신, 근대 일본으로의 성장의 시작 [역사&오늘]

1월 3일, 왕정복고로 에도 막부 종식

왕정복고와 에도 막부의 종말. (출처: Shimada Bokusen 島田墨仙(193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68년 1월 3일, 일본에서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265년간 이어진 막부(바쿠후) 체제가 무너지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오랜 기간 쇄국정책을 유지하던 막부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의 내항과 함께 서구 열강의 개항 요구에 굴복하게 됐다. 막부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국권을 침해당하고 국민들의 불만을 샀다. 서구 문물이 유입되자 일본 사회는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막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막부는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했다. 막부의 무능함과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무라이 계층은 불만을 품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다. 농민들은 높은 세금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반란을 일으켰고, 막부의 권위는 더욱 약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어난 존왕양이 운동은 천황의 권위를 높이고 막부를 타도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이었다.

1866년 3월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삿초 동맹을 결성하고 막부 타도를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삿초 동맹은 막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에도성을 함락시켜 결국 막부를 멸망시켰다. 막부가 멸망하자 메이지 천황이 정권을 장악했다. 메이지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의 왕정복고는 쇄국 정책의 한계, 막부의 무능, 서구 열강의 압력, 존왕양이 운동의 확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일본은 근대 국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혼란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어려움도 겪었다.

결국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대정봉환을 통해 천황 체제를 확립하고 근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이루어내며 아시아의 열강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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