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역사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 독재자 [역사&오늘]

12월 30일,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취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출처: Age FotoStock, 사진(1969),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65년 12월 30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필리핀의 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장기 집권과 독재 정치로 인해 필리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인물이다.

마르코스는 1917년 9월 11일 태어났다. 유복한 생활 속에서 필리핀대학교에 진학해 법률을 전공하고 1936년 마닐라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군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후 게릴라군 지도자가 됐다.

1949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1950년에는 마닐라 시장이 됐으며, 1959년 상원의원이 됐다. 이후 대권에 도전해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집권 초기 민주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경제를 부흥시켰으며, 실리 외교를 펼쳐 국민의 지지를 얻었고, 1969년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1972년 9월계엄령을 선포해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을 제한하며 독재자로 돌변했다.

마르코스는 1973년 다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고 종신 대통령의 야욕을 드러냈다. 또한 부인 이멜다를 각료에 임명하고 친인척을 요직에 앉히며 족벌체제를 구축했다. 그의 정권은 전형적인 권력남용과 비리로 점철됐으며, 경제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3년 미국에 망명했던 정적 베니그노 아키노 2세가 귀국 직후 암살되자 국민 대다수가 그에게 등을 돌렸다. 1986년 떨어진 인기 속에서 부정선거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의회로부터 부정선거, 부패, 범죄 등을 이유로 탄핵 절차를 밟고 있었고, 마침내 민중 항쟁이 일어났다. 군부도 그의 진압명령을 거부했고, 친아키노 진영과 친마르코스 진영 간 유혈사태 직전 미국의 설득으로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후 그의 일가가 자행한 엄청난 규모의 뇌물 수수와 횡령 등이 밝혀져 세상을 경악시켰다. 마르코스는 1989년 9월 28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향년 72세로 사망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