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례 총리 지낸 19C 英 정치사의 위대한 평민 [역사&오늘]
12월 29일, 영국 정치가 글래드스턴 출생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09년 12월 29일,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이 태어났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자유주의와 의회 정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글래드스턴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젊은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 생활을 시작했으며, 초기에는 보수 성향을 보였지만 점차 자유주의로 입장을 바꿨다.
1833년 의회에 진출한 글래드스턴은 자유무역, 선거법 개혁, 노동자 권리신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아편전쟁에 반대하며 도덕적인 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비록 표결에서 패해 아편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의 아편전쟁 반대 연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정의와 평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명연설로 남아 있다.
거물로 성장한 글래드스턴은 1867년 자유당의 수장이 됐고, 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라이벌 관계 속에서 총 4차례에 걸쳐 영국 총리직을 역임하며, 아일랜드 자치법, 비밀투표 실시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특히, 제국주의가 확산하던 시기에 평화주의적 외교 정책을 고수하며 도덕적인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19세기 영국 정치는 글래드스턴과 디즈레일리라는 뛰어난 정치인의 팽팽한 대결로 인해 더욱 흥미진진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정당을 대표하며, 서로 다른 정치 철학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자유당과 보수당이라는 양당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영국 의회주의의 묘미와 진수를 보여 줬다.
글래드스턴은 평생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헌신했다. 1894년 정계 은퇴 후 영국 왕실의 작위 수여 제의도 거부했다. 작위를 받는 것은 평민들의 대표로서 자신이 추구해 온 가치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1898년 '대평민'(The Great commoner)으로 위대했던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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