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부의 오판…잠자는 사자를 깨우다 [역사&오늘]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 발발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이 사건은 미국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태평양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일본은 1930년대부터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일본의 침략 행위를 비난하고 중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했다. 미국은 일본의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하는 등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는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줬고, 일본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동남아시아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본 내부에서는 군부 세력이 강력한 확장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군부는 자원 확보와 대동아공영권 건설라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이러한 군부의 강력한 주장에 결국 진주만 공격이 결정됐다.
진주만 공격은 미국에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으로 감행됐다. 일본은 6척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2척의 전함, 3척의 순양함, 9척의 구축함, 441대의 항공기 등 대규모 함대를 투입했다.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중심으로 항공기 기지, 유류 저장 시설 등을 집중 공격했다.
일본의 공격으로 미국은 12척의 함선이 침몰하거나 심각하게 손상됐다. 또한, 88대의 항공기가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인명 피해도 커서 2335명의 군인과 68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기지 시설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다만, 당시 항구에 없었던 미국의 항공모함 3척은 무사했고, 유류 보관소와 병기창 등도 일부는 온전했다. 이러한 자원들을 바탕으로 미국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군사력을 복구할 수 있었다.
진주만 공습은 미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이러한 분노는 참전 지지 여론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됐고, 이는 결국 일본의 패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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