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한니발이 로마에 남긴 것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로마를 증오하는 사나이

(서울=뉴스1)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니발 바르카(기원전 247~183?)는 비운의 장군이다. 그 비운이 본인의 능력 탓인지, 조국을 잘못 만난 탓인지는 두고두고 역사의 의문이 될 것이다. 좌우간 마지막이 좋지 않았기에 한니발은 명성에 큰 손실을 보았고, 덕분에 한니발이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잇는 세기의 명장이라고 하면 공감이 잘 안되는 분들이 많다.

한니발의 전투, 전략과 전술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한세대, 어쩌면 수백 년 만에 한 명 등장할까 말까 하는 명장이 맞다.

한니발의 아버지이며 한니발 이전 카르타고 최고의 명장이었던 하밀카르 바르카는 한니발이 어렸을 때부터 로마에 대한 증오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건 외부 관찰자의 시각일 것이다. 그건 증오라기 보다는 세계의 미래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게시였다. 세계는 통합의 시대가 있고 분열의 시대가 있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지중해를 두고 서로 반대편에서 성장해 왔다. 2개의 거대 쇼핑몰이 재래시장을 잠식하며 성장해 오다가 서로의 상권이 만났다. 같은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듯이 공존이 불가능한 상황, 하밀카르가 한니발에게 주입한 건 이런 미래 전망이었다.

미래는 전망했지만 미래의 색깔은 카르타고엔 회색이었다. 기울어진 추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소년 한니발의 남다른 점은 노력이었다. 야심을 지녀도, 꿈이 있어도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노력을 해도 목표를 향한 정확한 길과 방법을 찾아서 노력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군사적 역량에서 카르타고는 로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로마는 충직한 농부와 중산시민층이 병사가 되었다. 군대는 기율이 잘 잡혀 있고, 조국을 지키거나 조국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사명감 혹은 모험과 새로운 정복지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의욕이 차고 넘쳤다.

반면 무역국가였던 카르타고는 카르타고를 만든 고대의 진취성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시민들은 편안함만 추구했다. 군대는 용병으로 바뀐 지 오래였고, 이 용병들은 강한 군대와 싸우거나 모험적인 사명을 수행하는 임무를 회피했다. 밥값은 해야 했으니 치안 유지 임무나 아프리카의 부족들을 괴롭히면서 군인 노릇을 했다.

하밀카르와 한니발의 고민은 이 형편없는 용병들을 최소한 적에 비해 2배의 전투력을 갖춘 하는 군대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한니발 부자는 그것을 해 냈다. 용병과 직업군인은 절반은 같은 뜻인데 항상 전혀 다른 의미, 돈만 아는 형편없는 군대와 프로 의식 투철한 전문가라는 상반된 의미로 쓰인다. 한니발의 군대는 프로 전사의 군대로 바뀌었다.

그런 군대를 만들고, 그런 군대를 만드는 리더십을 익히기 위해 한니발은 소년시절부터 병사들과 숙식하면서 병사, 초급장교, 중급장교 모든 과정을 그것도 최고의 전사로 활약하며 경험했다. 그는 어느 지위에서나 제일 용감하고 제일 앞장서며, 제일 유능한 군인이었다.

알프스를 넘은 패잔병

한니발은 28세에 아버지의 군대를 물려받았다. 이때는 모든 군단이 한니발의 능력을 알고 믿고 있었다. 당시 그의 근거지는 스페인이었다. 이 군대로 차근차근 이탈리아 밖에 있는 로마의 점령지를 격파하고 탈환해 갔더라면 어땠을까. 필자 생각에는 필패다. 제3지대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본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승패를 좌우한다. 카르타고 정부는 한니발에게서 군대를 뺏지 못해 안달이었다. 용병이란 사병집단이고 한니발의 군사력은 카르타고의 주인이 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반면 로마는 아낌없는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한니발은 발상을 바꾼다. 어차피 카르타고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면 이탈리아로 침공하자, 로마는 아직 이탈리아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로마에 점령당한 지역에서는 로마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도시들도 많았다. 로마를 지원하는 국가 역량이 절반 이하로 끊기고 그 절반 또는 절반의 절반 정도는 한니발을 지원할 수 있다.

한니발의 알프스 종단은 흔히 생각하듯이 기습이 아니다. 적어도 한니발의 동정은 로마에 다 탐지되고 있었다. 사전에 충분히 대비를 못 한 건, 알프스를 넘다가 한니발 군대가 소멸해 버리거나 만신창이가 돼서 도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로마는 기다려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니발이 대장정을 시작할 때 병력은 보병 9만 명, 기병 1만 2000명, 코끼리 37마리였다. 6개월 후 이 군대가 이탈리아 북부에 도착했을 때, 로마의 기대대로 보병 2만에 기병 6000으로 줄어 있었다. 손실 병력의 절반은 한니발이 돌려보낸 병사들이었다. 그는 고난의 행군 동안 충성도가 떨어지는 병사들을 단체로 돌려보냈는데, 반란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병사들은 충성도는 높았지만, 목표에 도달한 성공자라고 해야 할지 간신히 생존한 패잔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이 패잔병 같은 무리를 이끌고 한니발은 두 번의 고비를 넘는다. 이탈리아에 도달은 했지만, 한니발 군대는 지치고 불안했다. 도중에 모집한 갈리아인 병사들의 충성심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다수는 투구도 갑옷도 없는 헐벗은 야만 전사 상태였다.

로마군이 이들을 공격해 왔을 때, 한니발은 기가 막힌 전술과 작전으로 로마군을 섬멸했다. 그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티키누스 전투, 트레비아 전투, 트레시메네 전투는 하나하나 전술 교과서에 실릴만한 명전투였다. 트레시메네 전투에서는 로마 집정관이 전사했을 정도로 참패였다.

카르타고군의 사기, 한니발에 대한 신뢰는 하늘을 찔렀다. 노획한 갑주로 갈리아 병사들도 완전무장을 했다. 이렇게 다시 완성된 군대로 한니발은 북부의 로마군 저항선을 돌파하고 이탈리아 중부를 거쳐 남부로 진입한다. 중남부는 반로마 정서의 거점이었다.

아무리 로마에 반감이 있다고 해도 카르타고는 이민족이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인의 지원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생각처럼 호응이 오지 않자 올랐던 사기가 다시 내려앉았다. 로마의 지도자인 파비우스는 지구전을 주장했다. 결전을 피하고 1년만 더 버티면 한니발은 자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다른 집정관인 바로가 파비우스를 비난하며 결전을 주장했다. 온건론과 강경론이 대립하면 강경론이 승리하는 법, 바로는 대군을 이끌고 한니발과 결전을 벌였고, 참패했다. 이것이 칸나이 전투이다. 그 결과 눈치 보던 도시들이 한니발에게 붙었다. 마침내 지원 세력을 얻은 한니발은 10년 이상 이탈리아에 주둔하며 로마를 괴롭힐 수 있었다.

로마제국을 만들어 준 영웅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물러나는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주제는 한니발이 로마에 끼친 은총이다. 한니발과 전쟁을 치르면서 로마는 몇 가지 극적인 변신을 하게 된다.

첫째는 동맹시에 대한 거의 평등한 우대정책이었다. 이탈리아 도시들이 한니발 편에 가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는 로마 시민권에 대한 차별 없는 대우를 포함한 동맹시 포용정책을 베풀었다. 훗날 로마가 세계 제국이 되었을 때,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는 로마 시민권 제도와 공평무사한 법 집행이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니발의 침공이 없었다면 로마인들도 편협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고, 제국은 쉽게 분열되었을 수도 있었다.

두 번째는 로마 군제의 개혁이다. 자랑스럽던 로마 시민군이 다른 도시나 나라를 격파할 때는 훌륭했지만, 한니발의 군대 앞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로마군은 시민군대에 대한 환성을 버리고, 로마군을 진짜 군대로 변모시켰다. 엄격한 규율과 훈련, 직업정신, 현장에서 전사를 발굴하고 능력 본위로 승진시키는 제도, 끊임없는 무기와 전술 개량, 오늘날까지도 군사 연구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는 로마군이 한니발 덕분에 탄생한다.

우리는 적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로마인도 한니발이 스페인이나 시칠리아에서 싸웠다면 그가 던져준 교훈을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헤집고 다니며 로마의 성문 앞까지 육박했던 덕분에 로마인들은 적이 남겨준 교훈을 절실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경험을 로마 제국의 확장기 동안 소중하게 사용했다. 한니발이야말로 로마제국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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