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변화와 동서양 문화 교류를 촉진한 전쟁 [역사&오늘]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십자군 전쟁 선언

십자군 전쟁. (출처: Thomas Andrew Archer, Charles Lethbridge Kingsford, 삽화(189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십자군 전쟁을 선언하면서 유럽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약 200년 동안 8차례에 걸쳐 지속된 십자군 원정은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1세기 중반, 중세 유럽은 인구 증가와 농업 생산의 한계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셀주크 투르크족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기독교도들의 성지순례가 어려워졌다. 동로마 제국이 서유럽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십자군 출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을 통해 교회의 권위를 강화하고, 분열된 유럽을 하나로 묶고자 했다. 그는 성지 회복의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십자군 참여에 면죄의 의미를 부여했으며, 기사들에게는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약속했다.

1096년 가을, 유럽 각지에서 모인 최초의 십자군들은 소아시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초기에는 민중 십자군이라고 불리는 비무장 순례객들이 참여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귀족과 기사들로 구성된 정규군이 참여하면서 전세가 바뀌었다. 1099년,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도시를 약탈했다. 이후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십자군 국가들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 꾸준한 이슬람 세력의 반격으로 결국 예루살렘을 잃고 말았다.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십자군 국가들은 13세기 초에 모두 멸망했다. 이 과정에서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오랜 갈등을 심화시켰으며, 서로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십자군 전쟁은 유럽 사회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봉건 사회의 질서가 흔들리고, 도시가 성장하며 상업이 발달하는 등 중세 유럽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유럽과 이슬람 세계 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전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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