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지켜라!"…韓 노동운동의 장을 연 절규 [역사&오늘]

11월 13일, 노동자 전태일 분신

전태일 열사 53주기인 1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3.11.13/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0년 11월 13일, 22세의 젊은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는 절규와 함께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그는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동료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대는 한국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를 겪던 시기였다.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많은 공장이 생겨나고 노동력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산업화에 집중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력이 저렴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공장 노동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긴 노동 시간, 저임금, 안전 불감증, 차별 등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법으로 보장된 노동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특히 봉제 산업과 같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더욱 심각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노동 운동을 탄압하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했고, 노동자들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전태일의 분신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전태일의 희생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의 불씨를 지폈고, 이후 한국 노동 운동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의 죽음은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