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라이카, 다누리, 그리고 아르테미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저녁 무렵, 외출했다가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몇 걸음 앞에서 어떤 여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반려견을 데리고 걷고 있었다. 킁킁거리며 걷던 반려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참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포르륵포르륵 날아다니는 것을 갸웃거리며 지켜보는 것이었다. 견종을 알 수 없는 그 반려견은 그렇게 1분 이상 참새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곤 다시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두리번거리던 반려견의 새카만 눈빛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참새들을 처음 본 것은 아닐 텐데 그 반려견의 눈망울에는 뭐가 그리 신기했던 것일까.
그 순간 라이카(Laika)가 생각났다. 1957년 11월 3일 소련 모스크바 근처에서 발사된 스푸트니크(Sputnik) 2호에 탑승해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동물. 지구 저궤도를 비행한 최초의 동물. 그때 라이카는 우주선 창문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라이카의 눈에 비친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칼 세이건의 말처럼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었을까.
라이카는 모스크바 거리에서 발견된 유기견이었다. 생김새로 미뤄 시베리안허스키와 테리어의 혼혈로 추정된다. 라이카는 비밀리에 유인 우주선 발사를 추 진중이던 소련이 그에 앞서 시험적으로 우주선에 태워 보낸 동물이다. 라이카가 우주선에 태워진 목적은, 누구나 짐작하는 대로 중력이 희박한 곳에서 살아있는 생명체에 가해지는 우주 비행의 충격을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소련 과학자들은 라이카의 몸속에 호흡, 맥박, 혈압을 체크할 수 있는 칩을 삽입했다.
라이카는 어떻게 죽어갔나. 스푸트니크 2호는 저지구 궤도(LEO)에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궤도를 벗어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라이카는 애당초 생존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라이카는 산소 부족과 태양열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여덟 살 때 스푸트니크 2호 발사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전체가 소련의 인공위성 이야기로 떠들썩한 가운데 어린 소년에게는 우주로 날아간 유기견 라이카가 뇌리에 박혔던 모양이다. 하루키는 1999년작 장편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사람들에게 까마득히 잊힌 라이카를 소환했다.
'1957년 11월3일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어 이듬해 1월14일 소멸되었으며, 무게는 508.3㎏으로 개 한 마리와 자외선 측정장치를 적재하고 있었다. 우주의 어둠을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인공위성 (···) 그 끝없는 우주적 고독 안에서 개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스푸트니크 2호가 라이카를 태우고 우주를 비행한 뒤 소련은 지속적인 우주비행 실험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4년. 소련은 마침내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발사하는 데 성공한다. 비행사 유리 가가린(1934~1968)이 보스톡 1호를 타고 대기권 밖을 비행하는 데 성공했고, 1961년 4월 지구로 무사 귀환을 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소련의 유인(有人) 우주선 발사 도전은 우주 경쟁에 불을 붙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 인간을 10년 내에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우주계획'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1969년 7월20일 인간은 최초로 달을 밟았다. 6회에 걸친 달 착륙과 탐사 끝에 1972년 아폴로 우주계획은 종료되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넘어간 2022년. 지난해를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먼저 무엇이 기록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카타르 월드컵, 달 탐사 경쟁의 재개 등이 상위에 들어가리라.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가 지난해 12월27일 무사히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한국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지난해 8월 초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다누리가 발사될 때만 해도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145일 만에 목표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그것도 궤도 진입 시도 3회 만에(당초 5회 예상). 이것은 100점을 맞아야 하는 시험에서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한다.
이로써 한국의 우주과학기술 수준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누리의 달 궤도 진입 성공은 한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7대 우주강국 도약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다누리의 여러 가지 임무 중 하나는 2030년대에 보낼 달 착륙선 후보지 탐색이다.
우리는 지난해 달 탐사와 관련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를 알게 되었다.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달의 신. 미국이 발사한 달 탐사선 이름이 아르테미스였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올림포스의 12신인 아르테미스를 일본 애니메이션 '세일러문 시리즈'를 통해 처음 접했다.
지금의 35세 전후의 한국 여성들은 달의 요정·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세대다. TV 시리즈로 인기리에 방영된 '세일러문'. 직장에 다니는 딸 역시 소녀 시절 세일러문 지휘봉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굿즈를 사들였다. 툭하면 흉내를 내며 놀았다. 그러니까 딸은 '세일러문'의 마지막 세대다. '세일러문'에 아르테미스가 등장한다. 이마에 초승달 문양이 있는 암컷 고양이가 아르테미스다.
미국은 1972년 이후 50년 만에 유인 우주선을 달에 보내는 계획을 '아르테미스Ⅰ'로 명명했다. 2024년에는 우주인을 태운 '아르테미스 Ⅱ'를 발사한다. 아르테미스Ⅰ이 계획대로 성공하면서 2024년 아르테미스 Ⅱ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2025년 여성 우주인과 유색인종 우주인을 태운 우주선을 발사해 달 남극에 착륙시킨다는 계획이다. 아르테미스 Ⅲ 계획이다.
지난해 중국과 인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 탐사선을 쏘아 올렸고, 일본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ispace)도 지난해 12월 '달 착륙선'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가 달 궤도선 발사에 들떠 있을 때 일본은 벌써 착륙선을 쏘아 올렸다. 아이스페이스는 달의 흙을 채취해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왜 갑자기 달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을까. 2020년에 체결된 아르테미스 협정 때문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우주선진국들이 우주 자원 채굴과 사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하면서 능력만 되면 누구든지 흙이나 광물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르테미스 협정으로 '달과 그 천연자원들이 특정 국가나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1979년의 달 조약(Moon Treaty)은 휴지가 됐다.
신년 벽두, 다누리가 '달 표면 너머의 지구 사진'을 전송했다. 다누리가 보낸 달과 지구 사진을 보니 우주가 달리 보인다. 자꾸만 다시 보게 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생길 것이다.
일본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가 달의 흙을 채취하는 데 성공한다면 세상은 온통 달 이야기로 뜨거워질 것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인간은 38만㎞ 밖의 달을 손바닥으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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