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보행자 전용 다리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다리. 뒤에 보이는 것이 호엔잘츠부르크 성. / 사진=조성관 작가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얼마 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갈 일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따라가다 보니 자동차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지나 한강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다리 위를 달리면서 불현듯 생각했다.

'어, 이 다리 처음 건너는 건데….'

월드컵대교였다. 마포구 상암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이어주는 다리.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2021년 개통되었다.

한강에는 상류의 팔당대교부터 하류의 일산대교까지 모두 33개 다리가 있다. 그러니까 월드컵대교는 한강에 놓인 33번째 대교다. 그중 철교(鐵橋)는 한강철교, 당산철교, 잠실철교 등 4개. 서울 사람들은 매일 한강에 놓인 대교와 철교를 오가며 일상을 산다.

그런데 한강 줄기에 걸쳐 있는 33개 다리 중 보행자 전용은 없다. 한강은 그만큼 강폭(幅)이 넓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한강공원이 시민의 여가 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10여년 전 부터 한강 다리의 생활 친화성을 높이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다리 중간에 전망 카페를 세우고 버스 정류장을 신설한 것들이 그 예다.

잘츠부르크의 보행자 전용 다리

모차르트와 카라얀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고향 잘츠부르크. 알프스산맥 끝자락에 놓여있는 인구 15만의 중세풍 도시. '세계의 무대'라는 별칭을 가진 3대 음악제의 도시. 2004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했다가 시민들의 반대로 자진 철회한 도시.

잘츠부르크를 관통하는 하천이 잘자흐(Salzach)강이다. 한강과 비교하면 강폭이 한강의 3분의 1이나 될까. 잘자흐강은 잘츠부르크의 구시가를 절반으로 가르며 흐른다.

잘자흐강에는 다리가 모두 9개 있다. 이중 보행자 전용교가 3개. 모차르트 슈테그, 마르코-파인골트 슈테그, 뮐네르 슈테그다. 뷔르케(brὔcke)가 아니라 슈테그(steg)다. 슈테그는 독일어로 '좁은 판자 다리'를 뜻한다.

잘자흐강의 보행자 전용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1903년에 놓인 모차르트 다리. 1903년이면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이고, 일본에 외교권을 넘겨준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2년 전이다.

모차르트 다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마리아가 폰트랩 대령의 자녀들과 노래를 부르며 잘츠부르크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미라벨 정원도 등장하고 모차르트 광장도 보인다. 그중에 마리아와 어린이들이 '마이 페이버릿 싱스'(My Favorite things)를 부르며 다리를 건넌다. 모차르트교다.

나는 모차르트교를 건너면서 처음으로 강의 물성을 다리 위에서 느껴보았다. 좁은 나무판자 틈 사이로 흘러가는 물결이 보였다. 마치 두 발로 강물 위를 걷는 듯했다. 모차르트교에서 다리의 상판이 수평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다. 다리는 너울처럼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퐁데자르. 나무 상판 위에 벤치를 놓았다. 뒤에 보이는 것이 루브르 박물관. / 사진=조성관 작가

파리 센강의 보행자 전용다리들

파리 센강에는 모두 36개의 다리가 있다. 길이 50m 안팎의 짧은 다리부터 200m가 넘는 다리까지 다양하다. 센강의 다리 중 유명해진 몇몇 다리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미라보 다리'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 때문이다. 하지만 낭만적인 시구(詩句)만을 생각하고 미라보 다리를 찾았다가는 실망한다. 미라보 다리는, 한마디로 멋대가리 없다.

'퐁뇌프의 연인들'로 널리 알려진 퐁뇌프(pont neuf)는 '새 다리'라는 뜻. 볍씨처럼 생긴 시테섬의 끝부분에 놓인 다리로 차도와 인도 겸용이다. 퐁뇌프는, 길이로 보면 길지도 짧지도 않다.

센강의 다리 중 '스토리 텔링'이 풍성한 다리가 예술의 다리, 퐁데자르(Pont des Arts)다. 1804년 센강에 놓인 최초의 보행자 전용교. 퐁데자르가 처음 놓였을 때는 한동안 통행료를 받았다. 그래서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만 이 다리를 건너다녔다. 19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퐁데자르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퐁데자르는 루브르박물관과 프랑스학술원을 연결한다. 어느 쪽에서 앵글을 잡아도 멋진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들어온다. 생제르맹 대로에서 루브르박물관으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는 게 지름길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다리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리 위를 걷는 장면이 있으면 십중팔구는 퐁데자르다. '본 아이덴티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어떤 영화에서는 자동차까지 달리게 한다.

퐁데자르는 '사랑의 자물쇠'로도 유명하다. 언제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정확지 않지만 사람들이 사랑의 징표로 열쇠를 매달았다. 다리 난간에 자물쇠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급기야 파리시는 교량 안전을 우려해 자물쇠들을 다리 난간에서 강둑으로 옮겨야만 했다.

센강의 36번째 다리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 교. /사진=조성관 작가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가는 다리

파리의 36개 다리 중 파리 12구와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을 연결한 다리가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Passerelle Simone de Beauvoir)다. 여성 이름이 붙은 최초의 센강 다리다. 파리시는 보부아르 20주기에 맞춰 2006년에 완공한 이 보행자 전용 다리에 작가 이름을 붙였다.

보부아르는 20세기를 산 프랑스 여성 중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이다. 스스로 모든 신간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대부분 국립도서관에서 읽었다. '제2의 성'을 보면 '모든 신간을 읽었다'는 보부아르 말이 결코 허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층 구조로 설계된 이 다리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밀회의 장소이면서 아크로바트 연습 공간. 이 다리를 걷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 것과 같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석양 무렵의 카를교. / 사진=조성관 작가

프라하성과 구시가를 잇는 낭만의 다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행자 전용교는 잘자흐 강도 센강도 아닌 블타바강이 품고 있다. 체코 프라하를 남북으로 가르며 보헤미안의 영혼에 흐르는 강. 체코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제2곡 이름이기도 한 블타바.

구시가 광장과 프라하성을 이어주는 다리 카를교. 18세기 중엽까지 프라하성과 구시가 광장을 잇는 다리는 카를교뿐이었다. 스메타나, 드보자크, 카프카의 발걸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다리.

석축교인 카를교는 길이 520m로 걷기에 아주 적당하다. 울퉁불퉁한 포석은 라르고의 발걸음을 요구하고 낭만적 감성을 소환한다. '키스 다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카를교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다리가 높지 않아서다. 다리가 높으면 강물은 어질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카를교를 걷는 것은 성인상(聖人像)들의 사열을 받는 것이다.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네포무크 성인상 앞에서 여행객들은 간절하다. 손으로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로 인해 신발이 반들반들하다. 40여년간 공산체제의 암막에 가려져 있던 카를교를 세계에 알린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이다.

서울시는 잠수교를 보행자 전용다리로 바꾸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잠수교는 다리 상판이 평평하지 않다. 마치 쌍봉낙타의 혹처럼 상판이 불룩 솟아 있다. 애초에 유람선이 다리 밑으로 통행할 수 있게 설계하다 보니 이런 모양이 되었다. 바로 그 두 개의 혹이 보행자 전용교'로서 잠수교만의 매력이다. 잠수교가 보행자 전용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한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여름철의 카를교.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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